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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뉴스 안동

어느 윤에 놋다리로, 공민왕에 놋다릴세 ‘안동놋다리밟기’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10.01 18:27 수정 2018.10.01 18:27

안동놋다리밟기보존회는 탈춤공원 경연무대 앞에서 경상북도무형문화재 제7호 안동놋다리밟기를 시연했다.
안동을 대표하는 남성들의 대동놀이가 차전놀이라면 잔잔하면서도 그 역사가 깊고, 아름다운 안동사람들의 충성심을 배경으로 한 여성들의 대동놀이 놋다리밟기가 있다.
지난달 30일 시연한 놋다리밟기는 안동지방에서 작은 보름날이나 대보름날 부녀자들이 동부, 서부로 갈라 놀았던 안동 대표적인 여성대동놀이로 동교(銅橋), 기와밟기, 인다리(人橋) 라고도 불린다.
14~15세 소녀부터 중년 부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200여 명 부녀자들이 참가하는 대동놀이는 안동시내와 임하면의 금소리, 임동면의 중평리에서 성행했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안동지방 풍속에는 동네 여자들이 모두 떼를 지어 성 밖에 나가서 모두 엎드려 줄을 짓는데 앞뒤가 연결돼 끝없이 잇는다. 어린 소녀 한 명을 엎드린 사람들의 등 위로 걸어가게 하고, 좌우에서 그녀를 부축해 서로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마치 다리 밟는 놀이 같다. 이때 아이가 먼저 “이것이 무슨 다리요?” 하고 소리쳐 물으면, 엎드린 사람들이 일제히 “청계산 놋다리요!” 라고 대답한다. 길을 따라 동쪽 혹은 서쪽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밤이 샌 후에야 그만 둔다.’고 돼 있음을 볼 때 옛날에도 놋다리밟기는 부녀자들의 민속으로 계속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1361년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광주, 충주를 거쳐 안동으로 몽진해 약 4개월 동안 머물게 된다.
공민왕 일행이 안동에 들어올 때는 초겨울이었는데, 소야천(솟밤다리)에 다다라 다리가 없는 큰 내를 건너기 위해 왕과 노국공주(왕후)는 신발을 벗어야 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주민들이 너도 나도 나와서 허리를 굽혀 다리를 만들고 노국공주가 등을 밟고 건너도록 했다.
이후 안동에는 ‘놋다리밟기’놀이가 시작됐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왕과 공주의 고되고 지루한 피난생활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주민들이 이 놀이를 창안해 냈다고도 한다.
1984년 설립된 안동놋다리밟기보존회는 민속축제 초기부터 시연해 왔으며, 1996년 제26회 대회까지 안동여고와 경안여상고 학생들이 번갈아 시연해 오다가 27회 대회부터 놋다리밟기보존회에서 회원들이 시연하고 있다.      

박채현 기자  95ch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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