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이유는 지금보다 사정이 많이 나빠질 것 같아서입니다. 실제로 퇴직 전과 퇴직 후에 받는 충격의 낙차(落差)는 큽니다. 소득이 줄어드는 낙차뿐 아니라 사회가 나를 대하는 관심과 태도의 낙차도 큽니다. ‘그 정도 낙차 뭐 별거냐’라는 태도로 문제가 닥칠 때 적응하는 것도 좋습니다만 성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미리 준비해서 낙차의 충격을 줄이는 것이 방법입니다. 발 앞의 계단처럼 쑥 내려가는 곳이 있다는 걸 알고 발을 내딛을 때와 전혀 모르고 내딛을 때는 충격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미리 맷집을 키우는 겁니다. 유도를 처음 배우면 낙법을 가르쳐 주고 그 다음엔 낙법 연습이라는 명목으로 매트에 계속 패대기 칩니다. 별의별 충격을 받다 보면 이제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소크라테스는 겨울에 맨발로 다니고 밤새 서 있는 등 기이한 행동을 했습니다. 인내심뿐 아니라 체력 자체가 워낙 좋았다고 합니다. 당시 그리스는 자그마한 도시국가들이고 전쟁이 자주 일어나니 오늘의 귀족이 내일의 노예가 되기도 합니다.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래서 평소에 노예의 처지를 경험하면 ‘여차 해도 견딜만 하구나’라는 생각으로 불안감이 사라지고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어서 그랬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여튼 미리 경험해보는 게 인생 후반의 낙차 충격뿐 아니라 현재의 불안감도 줄여줄 수 있습니다.
노후의 맷집 키우는 방법이 많이 있겠지만 몇 가지만 소개해보겠습니다. 우선, 밥을 혼자 먹어 보는 겁니다. 상사들은 점심 약속이 없으면 직원들에게 식사 가능하냐고 물어봅니다만 그냥 혼자서 해결하거나 간단히 샌드위치로 먹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휴일에 집에서 식사를 직접 차려 먹습니다. 쉬운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요리를 만들어서 가족과 같이 먹어 보는 연습을 합니다. 저는 대략적인 요리는 할 수 있어 밑반찬만 있으면 모두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한 두 번 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요리에 친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워낙 배달이 잘 되니 굳이 요리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나 생각도 들지만 노후에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으니 본인의 인건비로 식사를 만들어 먹어야 합니다. 혼자 집에 한 달 있어도 먹을 것 걱정이 없어야 합니다.
게으름을 피우는 능력을 연습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60세 퇴직하면 먹고 자고 아파 누워 있는 시간을 제외해도 11만 시간의 가용시간이 있습니다. 동작이 느려지고 생각 속도가 느려지고 소화도 더디게 되는 등 생리적 리듬이 늦어지기에 삶의 리듬도 맞추어 가야 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 돈도 들이지 않고 즐겁게 놀았습니다. 인간을 ‘호모 루덴스’ 즉 ‘유희하는 인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를 주창한 문화 사회학자 호이징아는 유희가 문화의 부분이 아니라 문화의 기원이라고 보았습니다. 돈 쓰지 않고 TV 보지 않으면서 노는 능력을 키워 보십시오. 내 안에 있는 유희라는 본능을 일깨워 보십시오.
결핍을 경험해봅니다. 여기에는 재무적 결핍(돈의 결핍)과 비재무적 결핍이 있습니다. 소비의 기어를 5단에서 4단, 3단으로 내려봅니다. 가끔 신용카드 없이 돈 만원만 들고 시내에 나가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운동도 피트니스에서 하는 데서 벗어나 걷고, 계단 오르고, 악력기를 하고, 집에 손 받침대 갖다 놓고 팔굽혀펴기를 하면 됩니다. 관계의 결핍도 경험해보아야 합니다. 친구들 찾아 다니지만 말고 혼자서 걷고 산에 가고 독서를 하거나 여행도 가 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가 주는 욕망을 잘 구분해서 버려야 합니다. 마블 없는 쇠고기에 익숙해지는 거죠. 욕구는 제한되어 있지만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배고픈 것은 배 부르면 해결되지만 맛 있는 걸 먹고 싶은 마음은 끝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추운 것은 옷을 입으면 해결되지만 최고로 좋은 옷을 입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욕망과 욕구의 갭을 줄여 가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물건을 팔아야 하므로 사람들에게 끊임 없이 욕망을 불러 일으킵니다. 내가 생각지도 않은 욕망은 외부에서 주입된 것입니다. 성찰을 통해 부풀려진 욕망의 실체를 알고 줄여 가야 합니다. 경제학에서 효용은 소비의 함수입니다. 소비를 많이 하면 효용이 증가한다는 거죠. 효용이 증가하면 행복해지지만 한편 행복은 욕망에 반비례 합니다. ‘행복=효용/욕망’인 셈이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내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친구들 모임에 가서 와이셔츠 이야기가 나왔는데 절반이 직접 다림질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맷집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인생 후반전에 들어서면 노후의 현실은 우리를 업어치기처럼 패대기 쳐버립니다. 노후의 낙차(落差)에 대비해서 낙법(落法)을 배워 놓고 맷집을 키워 놓아야 합니다. 그 방법으로 혼밥, 요리, 유희, 결핍, 욕망을 이야기했습니다만 다림질 예처럼 각자의 노하우를 덧붙여 맷집을 잘 키우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