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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유복자)를 인복(人福)이 좋다니!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02.10 18:57 수정 2020.02.10 18:57

김 시 종 시인
국제PEN 한국본부 자문위원

‘교장선생님(필자)은 세상에서 가장 인복(人福)이 있는 사람입니다’
몇 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60대 초반의 김 모 여류시인의 말씀이다.
나를 보고 인복(人福)이 좋다니 놀라 나자빠질 기상천외의 말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에서 아버지를 사별(死別)한 여섯 달 유복자(遺腹子)로 땅 한때기도 없는 철빈(鐵貧)이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자 만고풍상(萬古風霜)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버지는 26세에 치감(잇몸병)으로 허무하게 무너지셨다. 만주 목단강 철교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시다가 만주의 혹한에 동상에 걸려 집에 돌아오셔서 늙은 아버지 어머니와 새파란 아내(24세)와 여섯 살, 세 살의 두 딸을 두고 눈을 감고 말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뱃속에 있는 태아인 나는 아예 알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말문을 닫기 전에 규휘 자매 눈에 눈물 흘리지 않게 다른 가문으로 팔자를 고쳐 가게 돼도, 두 딸을 잘 부탁한다고 간곡하게 부탁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권고를 따르지 않고 가난하고 몹시 힘들었지만, 3남매를 버리지 않고 잘 보듬어 주고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지성을 다하셨다. 어머니는 시부모를 정성껏 모셔 여러 차례 문경군수가 주는 효행표창을 받으셨고 사단법인 보화원에서 주는 보화상 효행부문을 받으셨다. 어머니는 남편을 여읜 청상과부인 독신으로 60년을 사시고, 84세에 먼저 가신 부군의 곁으로 가셨다. 남편도 없이 가진 재산도 없이 3남매를 키우시고 모진 세파를 이겨 내시고 승리의 인생을 사셨다. 외아들이자 유복자인 나도 어머니의 고마운 뜻을 잊지 않고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각별히 유념하였다.
수중무일푼(手中無一分)으로 문경고등학교 3년을 담임교사이신 이대성 선생님의 각별한 배려 덕분에 빛나는 고교졸업장을 쥐게 되었고, 고교졸업 즉 후 육군에 자원입대하여 2년 10월(만34개월)을 복무하고 만기제대를 하고, 국립대학인 A교육대학을 손에 가진 것 없이 2년을 고학(苦學)으로 이겨냈다.
초등교사 의무복무를 마치기 바쁘게 문교부시행 중등준교사 고시검정자격에 단번에 합격하여(1969년 역사과), 경북도교육청 중등교사 임용고시에 우수한 성적(36명중 3위)으로 합격, 1970년 3월 1일자로 문경군 가은중학교 교사로 발령받았다. 안동교대 재학 중에(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467:1)하여 교사자격증보다 시인 자격증을 먼저 땄다. 중등교사 중 교감승진이 가장 힘든 과목이 과학과(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사회과(역사·지리·일반사회)인데 제때(52세) 교감으로 승진하여 국공립 중·고등학교 교장을 5년하고 정년퇴임을 하고 정부포상은 황조근정훈장(2등급)을 받아 보통교원(초·중·고 교원)으론 최고훈장을 받고, 정년퇴임을 했다.
내가 교육계의 꽃인 국공립 중·고등학교 교장이 되고, 중진시인이 된 것은 나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제자의 앞길을 염려해 주신 고교시절 은사 이대성 선생님과, 청상과부로 인생을 아들위해 희생하신 어머니께 공을 돌려 드린다. 좋은 선생님과 희생정신이 투철한 어머니를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다.
세상에 대가(희생)없이 되는 일이 없는 것을 알고 살아야 바른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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