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칼럼

[욜로은퇴] 새해, 만개(滿開)를 꿈꾸며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12.30 19:41 수정 2019.12.30 19:41

김 경 록 소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말이 되면 올 한 해를 돌아보게 됩니다. 인생의 후반이 되면 앞의 삶을 들여다 보겠지요. 한 해를 지나면 다음 해가 있듯이 전반기 삶을 지나면 후반기의 삶이 펼쳐질 겁니다. 이럴 때면 ‘나는 무엇을 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불어,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가 생각납니다.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1929년에 출간한 이후 별다르게 주목을 끈 소설을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작가 인생도 끝이 났다고 생각할 즈음에 ‘노인과 바다’를 1952년에 발표하게 됩니다. 23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이 소설로 헤밍웨이는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 둘을 거머쥐게 됩니다. 줄거리는 그의 문체만큼이나 담백합니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노인이 이제 운이 다한 한 물 간 어부라고 생각합니다. 노인의 배에는 소년이 타고 있었는데 40일 동안 노인이 물고기를 잡지 못하자 그 부모는 아이를 다른 배에 태웁니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벗이 되던 소년마저 곁을 떠난 것입니다. 노인은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한 불운에 대해 그냥 85는 행운의 숫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바다로 나갑니다. 과연 85일째 거대한 청새치가 걸려들었고 사투 끝에 생애 가장 큰 물고기를 잡습니다.
하지만 상어에게 모두 뜯기고 뼈만 갖고 돌아옵니다. 그의 수고는 헛되게 보였습니다. 노인은 소년에게 자신은 청새치를 잡는 데 실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년은 “상어가 먹은 것이지 할아버지는 청새치를 잡는 데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아마 노인이 듣고 싶었던 말이겠지요. 관광객이 바텐더에게 바닷가에 버려진 큰 물고기 뼈가 무언지 물어봅니다. 바텐더는 티뷰론(스페인어로 상어)이라고 답해 줍니다. 저렇게 큰 청새치는 본 적이 없으니까요. 관광객은 상어가 저렇게 아름다웠냐고 말합니다. 노인은 다시 아이와 같이 배를 타고 나갈 일을 생각하며 잠 속에 빠집니다. 꿈에서 노인이 젊을 때 아프리카에서 보았던 사자를 봅니다.
‘번성하다’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prosper와 flourish 둘이 있습니다. 우리는 두 단어 모두를 ‘번성하다’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prosper는 물질적인 면에서 성공하거나 재정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업 매출이 두배 오르고 이익이 많아지면 번성한다고 말합니다.
반면 flourish는 생물이나 조직이 성장하는 걸 의미합니다. flourish는 라틴어 florere에서 비롯된 말인데 그 어원 flor는 꽃(flower)을 의미합니다. 결국 flourish는 꽃이 활짝 핀 모습을 뜻합니다. 씨앗이 꽃으로 피듯 자기가 가진 잠재력이 발현되는 거라 볼 수 있겠습니다.
연륜의 무게 중심이 옮겨갈수록 flourish하는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물질적인 번성의 삶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활짝 꽃 피우는 삶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거죠. 신은 인간을 세상에서 금욕하고 고행하고 봉사하고 노동하라고만 보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이 심어놓은 재능을 활짝 꽃 피우라고 보냈을 겁니다. 그래서 불교의 화엄(華嚴)은 온 세상에 수 많은 꽃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활짝 핀 세계입니다. 꽃을 피우는 삶을 위해서는 나의 아레테(arete)를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아레테는 자신이 가진 고유한 덕성, 특성, 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심겨 있는 달란트인 셈입니다. 그 달란트를 알아야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모제스(Moses) 할머니(1860~1961)는 농부의 아내로 평범하게 살다가 남편이 죽고 나서 70대 중반을 넘어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이 그림들이 우연한 기회에 뉴욕 화상(畵商)의 눈에 띄어 미국 전역에서 유명하게 됩니다. 101세 사망할 때까지 그림을 그렸으니 무려 20년 이상을 그린 셈이죠. 모제스 할머니는 아마 뉴욕 화상의 눈에 띄지 않아 유명해지지 않고 돈도 많이 벌지 않았더라도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아레테를 맘껏 꽃 피웠으니까요.
수명이 길어졌다는 건 인생을 한 번 더 살게 된 거라 볼 수 있습니다. 퇴직 후 활동시간은 20~30년 정도일 텐데 과장이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20~30년은 우리가 성장하고 학교에서 교육 받는 시간을 제외하면 인생 전반기와 버금 가는 시간입니다. 게다가 인생 후반기에는 자녀를 부양하느라 투입되는 시간이 없으니 실제 나에게 가용한 시간이 길어집니다. ‘다시 태어나면 이렇게 살 거야’라 하지 말고 이 생의 후반에 그 삶을 실천해보십시오.
한나라 때 장건(張騫)이 황하를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곤륜산에서 발원한 황하의 물줄기가 염택이라는 광야에서 자취를 감추고 땅 밑에서 몇 천리를 잠류(潛流)하다가 갑자기 솟구쳐 올라 도도한 기세로 8800리를 가서 바다로 흘러간다는 내용입니다. 헤밍웨이의 23년 세월, 그리고 산티아고 노인의 84일 시간은 황하의 물줄기가 땅 속에서 몇 천리를 잠류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인생의 전환기에 마주하는 답답함의 시간은 잠류의 세월일지 모릅니다. 그 물줄기가 땅 위로 솟구쳐 올라 도도하게 바다로 흘러가는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그 물줄기는 prosper가 아닌 flourish입니다. 새해를 맞아 다시 만개(滿開)하는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자 세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