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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漢字로 보는 世上] 읍참마속(泣斬馬謖)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12.22 17:53 수정 2019.12.22 17:53

배 해 주
수필가

울 泣.  벨 斬.  말 馬.  일어날 謖.

울면서 마속을 벤다는 뜻이다. 법의 공정을 지키기 위해 사사로운 정(情)을 버리는 것을 말하며, 큰 목적을 위해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가차 없이 버릴 때 쓰는 말이다.
삼국시대 초엽인 촉(蜀)나라 건흥(建興) 5년 제갈량(諸葛亮)은 대군을 이끌고 성도(成都)를 출발했다. 곧 섬서성을 석권하고 감속성으로 진출하여 위(魏)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그러자 조조(曹操)가 급파한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司馬懿)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에 부채꼴의 진을 치고 제갈량의 침공군과 대치했다. 이 진지를 깰 제갈량의 계책은 이미 서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인 만큼 군량 수송로를 수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여기서 패하면 중원 진출의 중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런데 그 중책을 맡길 만한 장수가 없어 제갈량은 고민했다.
그때 마속(馬謖)이 그 중책을 자원하고 나섰다. 그는 제갈량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명참모 마량(馬良)의 동생으로, 평소 제갈량이 아끼는 장수였다. 그러나 노회(老獪)한 사마의와 대결하기에는 아직 어리다. 제갈량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했다.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 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패하면, 물론 일가권속(一家眷屬)까지 참형을 처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자 “좋다, 그러나 군율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부터 살펴보았다. 삼면이 절벽을 이룬 산이 있었다. 제갈량의 명령은 그 산기슭의 도로를 사수하라는 것이었으나 마속은 적을 유인하여 역공할 생각으로 산 위에 진을 쳤다.
그러나 위나라 구사는 산기슭을 포위한 채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식수가 끊겼다. 마속은 전병력으로 포위망를 돌파하려 했으나 용장인 장합(張?)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전군을 한중으로 후퇴시킨 제갈량은 마속에게 중책을 맡겼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군율을 어긴 그를 참형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마속이 처형되는 날이 왔다. 때마침 성도에서 연락관으로 와 있던 장완(張?)은 마속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설득했으나 제갈량은 듣지 않았다.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요. 하지만 사사로운 정에 끌리어 군율을 저버리는 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되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차 없이 처단하여 대의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는 법이오”
마속이 형장으로 끌러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으려 울었다고 한다.
훌륭한 장수와 위정자는 사사로운 정(情)에 얽매여서는 되지 않는다. 평소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라도 잘못을 하면 즉시 상응한 조치를 해야 한다.
우리는 최근에 읍참마속을 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진행형이다. 법을 위반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궤변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조직을 관리해야 하는 자리에 앉으려는 사람은 양심과 도덕에 하자가 있어서는 곤란하다.
한 걸음 더해서 위·탈법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자리에 앉지 못하게 해야 한다. 혹자는 자신의 작은 하자도 드러내기 싫어 어떤 자리도 사양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누가 보아도 안 될 사람을 천거하고 신임해 주는 나쁜 선례는 지금까지도 종종 있었다.
위정자는 가장 아끼고 신뢰하는 사람일수록 작은 잘못이 있으면 정에 이끌려 특정한 자리에 앉히는 일은 앞으로는 없어야 할 것이다.
바로 지금같이 어려운 상황일수록 읍참마속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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