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狐 거짓 假 범 虎 위엄 威
전국책(戰國策)에 실린 말로서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어 다른 짐승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남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릴 때 비유한 말이다.
가호위호(假虎威虎)로도 쓰인다.
전국시대인 기원전 4세기 초엽, 초(楚)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선왕은 위(魏)나라에서 사신으로 왔다가 그의 신하가 된 강을(江乙)에게 물었다.
“위나라를 비롯한 북방 제국이 우리 재상 소해홀(昭奚惚)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오?”라고 묻자 “그렇지 않습니다. 북방 제국이 어찌 일개 재상에 불과한 소해홀 따위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전하, 혹 ‘호가호위’란 말을 알고 계십니까?” 이에 선왕이 모른다고 하자, “하오면 들어 보십시오. 어느 날 호랑이한테 잡아먹히게 된 여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나를 잡아먹으면 너는 나를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로 정하신 천제(天帝)의 명을 어기는 것이 되어 천벌을 받게 된다. 만약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당장 내 뒤를 따라와 보라. 나를 보고 달아나지 않는 짐승은 단 한 마리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호랑이는 여우를 따라가 보았더니 과연 여우의 말대로 만나는 짐승마다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짐승들을 달아나게 한 것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였는데도 호랑이 자신은 그걸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북방 제국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소해홀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초나라 군대, 즉 전하의 강병(强兵) 때문입니다”라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고금에도 그랬고 지금도 호가호위하는 것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작게는 말단 고을인 자치단체에서도 있고 크게는 나라를 책임진 위정자를 둘러싸고도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분야가 잘되고 못 되는 것도 어찌 보면 바로 호가호위하는 자들이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자들이 없으면 선정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폭정이 되는 것이다.
특히 위정자를 둘러싸고 있는 참모들이 호랑이를 등에 업는 여우처럼 호랑이 행세를 하면 바로 호가호위하는 것이다.
호가호위하는 행위의 결과는 뻔하다. 여우면 여우로서 해야 할 일과 덕목이 있다.
그런데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업고 일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맡은 일에 자신이 없거나, 어떤 음모나 비정상적인 일을 도모하고자 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나 호가호위는 있다.
다만 그것을 위정자가 지득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한 걸음 더해 이를 알면서도 묵시적으로 용납했다면 이는 더 큰 문제다. 이런 사례들이 바로 국정농단이란 말로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것이다.
위정자는 자신만 사심을 품지 않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선정을 펼치면 된다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만큼 참모들을 잘 뽑고 뽑았으면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꿰뚫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평소 믿고 신임했던 사람이라고 그 자리에 오래 두면 호가호위의 유혹을 쉽게 물리칠 수 없다.
이는 동서고금을 통해 있었던 일이요, 앞으로도 있을 일이다.
그러기에 위정자는 자신을 돌아보는 만큼 주위의 인물들을 잘 관리 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호가호위했던 것은 반드시 드러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