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兎. 죽을 死. 개 狗. 삶을 烹.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는 뜻이다.
즉 쓸모 있을 때는 긴요하게 쓰이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는 말이다.
초패왕 항우(項羽)를 멸하고 한나라의 고조(高祖)가 된 유방(劉邦)은 소하·장량과 더불어 한나라 창업의 한 사람인 한신(韓信)을 초황에 책봉했다.
그런데 이듬해, 항우의 맹장이었던 종리매(鐘離昧)가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고조는 지난날 그에게 고전한 악몽이 되살아나 크게 노했다. 그래서 한신에게 당장 압송하라고 명 했으나 종리매와 오랜 친구인 한신은 고조의 명령을 어기고 오히려 그를 숨겨 주었다.
그러자 고조에게 “한신은 반심을 품고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다. 진노한 고조는 참모 진평(陳平)의 헌책(獻策)에 따라 제후들에게 이렇게 명했다. “제후는 초(楚) 땅의 진에서 대기하다가 운몽호로 유행하는 짐을 따르도록 하라”고 했다.
고조의 명을 받자 한신은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래서 아예 반기를 들까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죄가 없는 이상 별일 없을 것으로 믿고 순순히 고조를 배알하기로 했다. 그러나 불안이 싹 가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활한 가신이 한신에게 속이듯 말했다. “종리매의 목을 가져가시면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한신이 이 이야기를 하자 종리매는 크게 노했다. “고조가 초나라를 치지 않는 것은 자네 곁에 내가 있기 때문일세 그런데도 자네가 내 목을 가지고 고조에게 가겠다면 당장 내 손으로 잘라 주지, 하지만 그땐 자네도 망한다는 걸 잊지 말게” 종리매가 자결하자 한신은 그 목을 가지고 고조를 배알 했다.
그러나 역적으로 포박당하자 그는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다.
“교토사양구팽 (狡兎死良狗烹),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좋은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 고조진양궁장(高鳥盡良弓藏),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 적국파모신망(敵國破謨臣亡), 적국을 쳐부수고 나면 지혜 있는 신하는 버림을 받는다고 하더니 한나라를 세우기 위해 분골쇄신한 내가, 이번에는 고조에게 죽게 되었구나”
고조는 한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회음후(淮陰侯)로 좌천시킨 뒤 주거를 도읍인 장안으로 제한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유용하게 쓰고는 버린다는 이 말은, 여러 분야에서 인용된다. 죽고 못살던 친구 간에도 자신이 뜻한바 목적을 달성한 후 언제 그랬느냐며 돌아서는 일들이 뉴스거리가 되기도 한다. 사회에서 맺은 친구나 선후배 사이에도 종종 일어난다.
특히 정치판에서 잘 인용되는 말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 한 몸 같았던 동지도 견원지간이 되어 돌아서는가 하면, 권좌에 오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옛 동지를 버리는 것을 넘어 곤욕을 치르게 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심심찮게 접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특히 정권 교체기가 되면 이런 일은 자주 접하게 된다. 진보진영이나 보수이거나 구분이 없이 정권을 잡으면 당연히 일어나는 것이 작금의 사례다.
우리는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넘어 선진국 반열에 접어들었다. 수 천 년 전부터 사용되었던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단어가 이제는 옛말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