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78세, 79세도 이마빡에 붙었다. 어느새 필자(나)도 잊혀진(?) 시인이 된 것 같아 서운한 게 아니라 차라리 세상살이가 덤덤하다. 노옹으로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은 자발적은 일이요, 지나간 날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것이 더 멋진 포즈일 것 같다.
지난 날 문단활동을 돌아다보면 이 땅을 대표하는 주요한 매체, 일간신문과 중요종합잡지(신동아. 월간조선)와 주요문예지(현대문학·월간문학·시문학 등)에 시와 수필을 발표하여 좋은 평가를 평론가와 애독자들로 받은 것은 지금까지도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살고 있다.
필자(나)가 ‘젊은 날’이라 지칭한 것은(1962년~1991년)까지의 30년간의 창작활동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 기간(1962년~1991년)을 1기로 하여 이번 칼럼에 중점 취급하고, 1992년~2019년까지는 2기로 구분하여 다음 기회에 언급하고자 한다.
편의상 신문별로 일련번호를 매겨 간단하게 언급하려고 한다.
1. 동아일보→ 동아시조 네 차례 입선(1962년/ 당시 필자나이 20세)·‘여성동아’시 외팔이 춘희(1980년 6월호)·‘신동아’(시6회·수필1회 도합 7편 발표→영남권 시인으로 최다 발표)·취재기사 ‘문화의 빛을 찾아’(김시종편)/ 이시헌 동아일보편집부국장 취재(1985. 12. 20. 동아일보)
2. 조선일보→ ‘월간조선’ 시 2회(역설시초/자유의 여신상(1988년)
3.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1967년)·중앙시조입선 8차례(1966년) 등단 후 ‘시’ 수로가(1975년)/ 보랏빛 목련(1980년)발표
4. 한국일보→ 한국시단 5편 이상 발표(쑥떡/ 평범한 것/ 사과/ 피물장수 등) 당시 문화부장 신석초 중진시인
5. 세계일보→ 시 ‘고향’
6. 서울신문→ 에세이(영신도령과 영신들/ 1984. 2. 29.)
7. 현대문학→ 시·수필 20회 이상(1968년~1991년)
8. 시문학→ 1971년~2019년 현재 최장기 집필활동보장
이 밖에도 여러 신문과 잡지사에서 제게 집필기회를 주신 것을 세상에 살 동안 잊을 수 없다. 필자는 자유시(현재) 시조(1970년대 절필) 수필(현재)까지 자유롭게 창작하고 있다. 40년 전부터 정형시(시조)는 지어지지를 않아, 손을 놓은 지 오래된 지난날의 전설이 됐음을 알려 드린다. 지난 육군본부 군복무시절에 동아일보 동아시조란에 입선(入選)한 ‘옥수수’(김시종)을 다시 한 번 옮겨본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어울리는 가락인 것 같다.
(단시) 옥수수 / 김시종
옥수수 익어 가면 그리움도 여뭅니다.
임 오실 그날이면 가마에 불 지피고
오롯이 등심(燈心)타는 밤
깊은 사연 사뢰오리.
(동아일보 1962년 10월 8일/ 김시종·20세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