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5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사건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서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는 이례적인 일이 있었다. 그중에 삼성이 효과적인 내부 준법감시제도를 구축하라는 것이 있다. 비교적 덜 알려진 기업지배구조 개선 방법에 대한 언급이 나온 데 대해 의외로 생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히 이번 사건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을 재판부가 지적한 것이라고 본다.
나아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중요한 사건에서 법원에 의해 내부 준법감시제도가 강조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사실 삼성을 비롯한 국내 모든 대기업들은 내부통제와 준법감시체제를 이미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더 효율적으로 개선하라는 취지일 것이다.
독일의 옛 수도 본(Bonn)에 가면 DHL이 주인인 포스트 타워가 있다. 41층 빌딩이다. 필자는 이 건물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건물은 유리와 철골로만 지어져서 안이 훤히 다 보이고 아래위도 마찬가지다. 내벽과 문도 거의 유리다.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투명하다. 무려 9만3000㎡의 유리가 자재로 사용되었다. 안내한 사람이 이 건물 안에서는 아무도 게으름을 부리거나 부정한 행동을 할 수 없다고 농담을 했다. 누군가가 보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자본시장법의 기본 철학도 같다. ‘햇빛은 가장 강력한 살균제이고 전등은 가장 효과적인 방범이다’라는 교훈에 따라 자본시장법은 기업이 중요한 정보를 스스로 시장에 알리게 한다.
투자자들이 기업가치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부수적으로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효과까지 발휘한다.
내부통제는 쉽게 표현하면 한 사람이 볼 서류를 두 사람이 보도록 업무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다. 또, 한두 사람이 결정할 일을 위원회를 거치게 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라는 것은 중지를 모은다는 의미도 있지만 여러 개의 눈이 있다는 의미도 된다. 여러 사람이 보는 데서는 위법하거나 비윤리적인 행동이 잘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포기된다. 외부 압력이나 청탁도 효과가 약해서 단념시킨다.
물론 우리나라 대기업의 운영 구조상 회장이 꼭 하려는 일은 내부의 누구도 막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회장이 하려는 일을 결국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아는 상태에서 하게 되는 것이다.
또, 반대로 생각하면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의해 내키지 않은 일을 회장이 하는 것을 막아주는 방어막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특히, 이사회가 반대하는 상황에서는 외부의 누구도 회장을 더 푸시할 수 없고 “앞뒤 꽉 막히고 법만 아는 우리 법무팀장이 안된다면 나도 못한다”고 말할 수 있게 해준다.
국정농단 사건에서와 같이 권력자의 불법적인 외압, 요구가 있다 해도 반드시 회사의 준법감시부서를 거쳐야 하고 이사회 결의가 있어야만 그에 응할 수 있다면 불행한 결과는 생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사회에 부의할 만큼 큰 사안이 아니더라도 준법감시부서가 이사회에 알리게 하는 정도의 통제 장치가 되어 있다면 내부적으로 조용히 중단될 것이다.
내부통제는 사법적 의미도 가진다. 미국의 연방양형지침은 내부통제시스템이 잘 정비되고 관리되어 왔다는 것을 입증하는 기업에게는 임직원의 범죄행위에서 발생하는 회사의 형사책임을 최고 95%까지 감면해 줄 수 있게 한다.
1996년에는 그 유명한 캐어마크(Caremark)판결이 나왔는데 연방양형지침의 방침을 민사사건에도 적용했다. 이 판결이 나오자 기업들은(정확히는 경영자들은) 앞다투어 회사의 내부통제와 준법감시제도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다. 기업들은 내부통제를 문제 발생 시의 안전장치로 정비했지만 그 때문에 문제 발생 자체가 현격히 줄었다. 사법부의 판결 한 건이 막대한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한 대표적인 사례다.
꾸준히 성실했던 모범생에 대해서는 실수를 하더라도 선처해 줄 수 있게 해서 모범생의 수를 늘리겠다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