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회사를 경영하고, 후계자도 자식을 선택하는 것이 지금까지 동양 ‘타이쿤(경제계 거물)’들의 문법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문법을 단 한 번에 박살내버린 인물이 등장했다.
바로 중국 최대 온라인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영어명 잭마, 55) 회장이다.
그는 자신의 55회 생일을 맞은 10일 회장직에서 물러나며 현 최고경영자(CEO)인 장융을 차기 회장으로 지명했다.
사실 55세면 아직도 한창 일할, 연부역강한 나이다. 그런데 그는 은퇴를 선택했다. 너 나아가 가족이 아닌 전문경영인을 후계자로 삼았다. 기존의 동양 타이쿤과 전혀 다른 신세대 경영인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그동안 동양을 대표하는 경영인은 단연 홍콩의 리카싱이었다. 리카싱은 2018년 자신의 90세 생일에 맞춰 은퇴식을 갖고 큰아들인 빅터 리에게 청콩그룹 회장 자리를 물려주었다.
리카싱은 죽을 때까지 회장직을 고수하지는 않았지만 90세까지 회장직을 맡았다. 사실상 종신 회장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식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 사고의 기본단위인 동양은 한번 회장이면 영원한 회장이고, 경영권은 선대를 이어 후대가 이어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아직까지 동양의 타이쿤 중 이같은 관례를 깬 경영인은 없었다.
그런데 마윈 회장은 이같은 동양의 전통을 일거에 깨트려 버렸다. 지난해 마 회장이 은퇴를 발표했을 때, 일각에서는 중국 공산당에 밉보였다는 억측이 나왔을 정도로 그의 은퇴 발표는 큰 충격이었다.
그런데 마 회장은 꼭 1년 만에 자신의 공언을 실천했다.
그가 변화가 빠른 IT산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신세대 경영인이어서일까?
그 답은 미국 최고 권위지인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NYT와 인터뷰에서 “나의 롤 모델이 각종 자선 사업을 펼치고 있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라며 “남은 시간을 후세들의 교육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도 “나는 빌 게이츠 회장만큼 부자가되기는 힘들지만 더 빨리 은퇴할 수는 있다”며 조기 은퇴 후 교육 및 자선사업에 전념하고 싶다는 발언을 했다.
빌 게이츠 MS 창업주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가 등장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갑부자리를 지킨 인물이다. 그런데 게이츠는 58세에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교육과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게이츠는 58세에 경영에서 손을 뗀 것이다. 마윈은 ‘내가 빌 게이츠보다 빨리 은퇴하는 것은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55세에 경영에서 손을 뗐다.
한국에서도 자식이 아니라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뒤 회장직을 표표히 떠나 자선사업 등 제2의 인생을 사는 ‘멋진’ 재벌 회장님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