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칼럼

고서점의 발견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9.09 19:29 수정 2019.09.09 19:29

김 시 종 시인·자문위원
국제PEN 한국본부

인구 약 5만명의 문경시 점촌동에 달랑 새 책방이 한군데 밖에 없어 문화적인 측면에서 허전했는데, 이 지역에 아담한 헌책방이 둥지를 틀어 서점도 외톨이를 면할 수 있게 됐다. 고서점 주인도 고서(古書)처럼 정겨운 인상을 지니셔서 그야말로 금상첨화 격이다. 고서점은 단순한 헌책방이 아니라, 서적 박물관이다
웃음의 말로 없는 책 말고는 다 있다. 판매가격도 정가의 30%로 서비스를 해주어, 책 구입에 부담감을 덜어준다. 독서를 멀리하는 현대인의 문화적 괴팍성 때문에 웬만한 시골 군·읍에는 서점이 한 곳도 없는 무의촌 아닌 무 서점촌이 늘고 있다.
몇 해 전 가을, 처음 발견한 헌책방 앞에서 반가움을 누를 수 없어 고서점에 들어가 진열된 서가(書架)를 훑어보니, 첫눈에 A학점 이었다. 서점 주인도 인상이 온순하고 슬기로워 보이고, 연세도 예순 고개를 넘겨 고서점 주인으론 적격자로 보였다.
점촌동에 고서점(헌책방)이 생긴 것이 필자에게 얼마나 반가운지, 지난날에 가까이 지내던 이웃이 멀리 이사 가서 한참동안 많이 섭섭했는데, 그 이웃이 다시 곁으로 돌아온 것처럼 반가웠다.
1956년 필자는 중3이었는데, 요새 아동문고로 출판되는 소년소녀세계명작문고도 당시는 출판문화 미숙으로 발간되지 못한 출판 불모지였다. 다행히 바로 옆집에 이장사무실이 있어, 당시 일간신문인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연합신문, 매일신문이 매일 들어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주인 없는 이장사무실에 들어가 무조건 이들 신문을 정독(精讀) 아닌 남독(濫讀)을 했다. 당시 신문에는 한자가 많았지만, 한자실력을 갖춘 중3이었던 필자는 한자 때문에 불편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신문을 읽으면서 신춘문예 제도가 있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중학교 졸업 무렵인 1957년 초부터 학원세계명작전집 출판이 개시되어, 필자가 맨 처음 읽은 세계명작소설이 ‘집 없는 아이’였다. 학교 공부보다 소설에 흥미가 깊었던 필자는 폭넓은 독서를 통해, 공부벌레보다는 차원 높은 삶을 살게 되었다.
육군에서 제대하고 단칸방 곁방살이의 어려움 속에서도 필자의 책꽂이엔 여나무권의 필독 문학 서적이 어려운 현실을 이길 수 있는 막강한 힘이 되어 주었다.
지난날엔 필자를 감동시켰던 책이 지금 집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지만, 고서점엔 추억의 책들이 건재(健在)하여 기쁨을 더해준다. 신문, TV를 악취로 도배하는 사건, 사고의 주인공들은 배가 빈 것이 아니라, 골이 빈 사람이 많다. 영양실조보다 양서를 접하지 못한 독서 실조증이 인격파산자를 대량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CCTV보다 독서하는 국민들이 되도록 하는 것이 대형범죄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필자는 평생 재산증식엔 관심을 둔 적이 없다. 남은 것은 책밖에 없다. 많은 책이 잘 정리정돈 되지 않아 당장 읽고 싶어도 책을 찾자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도서관을 곧잘 찾는다.
고서점에서 얻은 보물목록 가운데 도서지(섬), 하천일람, 산유화(정비석), 저 하늘에도 슬픔이(이윤복), 구름은 흘러도(안말숙), 현대문학 창간호, 해(박두진), 홍길동전(정비석), 소년야사(학원사), 날개 없는 천사(박계주), 새벗 창간호, 자유문학 창간호 등이 필자가 고서점에서 낚은 대어(大漁)들이다.
헌책방(고서점)이 삶의 지혜와 기쁨을 맛보는 만남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독서하는 국민은 장래가 있고, 독서하는 개인은 현재의 행복이 있다.
포도주와 우정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지만, 헌책도 읽으면 우리에게 새 삶을 선사 한다.
 



저작권자 세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