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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문경문단사(聞慶文壇史) (하)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7.28 18:08 수정 2019.07.28 18:08

김 시 종 시인·자문위원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세상에 ‘우연’이란 말은 있어도, 결코 우연히 저절로 되는 일은 절대 없다. 적어도 1970년대의 문인에게는 생계보다 더 절박한 것이 작품 발표를 위한 지면(문예잡지)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필자가 어렵게 문협문경지부 창설을 강력하게 추진한 이유도 작품발표광장을 마련할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문학작품은 작자의 창작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독자와 만나야 완성된다.
문경문협이 출생신고를 하게 된 1976년은 전국 문인 수가 9백 명밖에 안되었지만, 종합문예잡지로 ‘현대문학’과 ‘월간문학’이 비교적 열린 자세로 작품을 취급했고, 시 전문잡지로 ‘시문학’, ‘현대시학’, ‘심상’이 있었다. 문인이 되자면 중앙일간신문의 신춘문예와 문학잡지의 신인상 당선이 되어야했기에 경상북도의 경우 천료된 문인이 한 명도 없는 시군이 70%를 넘을 만큼 당시 문인은 희소가치가 대단했다.
필자는 1968년 4월 7일자로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이 되었다.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는 경상북도에서 경주, 안동에 이어 세 번째로, 군부(郡部)로선 가장 먼저 깃발을 올렸다. 지부 창설을 서두른 것은 필자의 개인적 역경(逆境)에 영향을 받았다. 서울로 직장을 옮기려는 계획을 세우고, 고향을 떠나기 전에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 창설이라는 자취를 남기고 싶은 마음으로, 지부 창설 속도를 내어 1976년 5월 30일(토요일) 오후 2시에 점촌중학교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당시 창립발기회원은 김시종·김정일·이용우·서경희·김찬일·고동훈 씨로 6명이었다. 당시 문협지부 창설기준은 중앙회원 3명이 있어야 했으나, 문경 거주 문인 중에 중앙회원이 김시종(1968년 입회), 김정일(1976년 입회) 두 명뿐이어서 상주출신인 대구의 정재호 선생을 영입하여 가까스로 기준을 충족시켰다.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 초대임원은 고문(정재호·이용우), 지부장(김시종), 부지부장(김정일·고동훈), 사무국장(김찬일), 감사(서경희) 제씨였다. 창립총회 당일 뒤풀이는 상임고문을 맡은 이용우선생이 기꺼이 맡아 주었다. 월례회는 점촌 주변에 경치 좋은 곳이 많아, 달마다 감상이 새로웠으나, 창립 이후의 최대 과제는 회원들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무대를 꾸미는 일이었다. 매사를 성사시키는 것은 사람이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미 반은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학잡지를 내자면 적잖은 출판비가 필요한데, 우연히 길에서 만난 중·고 동기동창인 윤필태 친구가 문경문인협회 명예회장직을 맡아 출판비 전액을 흔쾌히 희사하여 주었다. 1977년 윤회장의 출판비 전액 부담으로 문협문경지부 기관지 백화문학(白華文學) 창간호가 탄생했다. ‘백의민족 문학의 정화(엘리트)’가 될 흑심(?)을 품고 ‘백화문학’으로 제호를 선뜻 결정했다. 창립 초기보다 회원도 배가가 되어, 시·소설·수필·평론 등으로 다양하게 꾸며졌다. 문협이 창설된 지 8개월 만에 지부문학지를 펴낸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국판 100쪽, 발행부수는 1천부였다. 창간호 표지를 맡은 남치호 교수는 후일 안동대학교 교무처장을 역임하였다.
문경문협은 창간호가 1977년 나온 이래 2019년까지 47집을 펴내는 저력을 보였다. 백화문학 창간호 신간 소개는 매일신문과 영남일보에 같은 날 보도되었다. 문경문협 기사를 게재한 두 신문사의 문화부 기자님들은 지금 생각해도 고맙기만 하다. 당시 관청에선 발간지원체제가 전혀 없어 지부장의 책무는 무거웠다. 지부장을 하자면 기관지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최우선시 되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이 폭풍 앞에서도 안 꺼지듯 백화문학은 경상북도를 대변하는 문예지로 성장했다.
문경문협은 1985년엔 한국문예진흥원이 선정한 경상북도 최우수문학단체가 되었고, 금복문화재단이 선정한 우수문학단체(1993년)로 우뚝 섰다. 첫 걸음을 사뿐히 뗀 백화문학은 16집(1988년)부터 27집(1999년)까지 독일의 노벨상 명문(名門)대학교 괴팅겐대학 알타이어과에 을유문화사(사장 정진숙)가 납본을 대행했다. 한국문예진흥원에서 ‘백화문학’을 우수동인지로 선정하여 4년간 연속 발간 지원을 한 바도 있다.
경상북도는 1996년, 개도(開道) 백 돌 기념으로 문경읍 문경새재에 타임캡슐을 매립했는데, 개봉은 매설 400년만인 서기 2396년 10월 23일에 개봉되는데, 경상북도에서 발간된 수십 종의 문학잡지 중에 백화문학 22집이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지역 문인들은 400년 후까지도 작품이 살아남게 되었다. 백화문학 22집은 백승익 교장이 집필한 일본문학 특집호다.
문경문협은 문학상을 제정·시상하고 있음은 전국 문협지부 중 가장 유명하다. 도천문학상(陶泉文學賞)은 천한봉 명장이 제정·후원하여 12회(1983년 ~ 1993년)까지 시행했는데, 신동집 시인·이기철·이하석·양채영·감태준·랑승만·정대구·정민호·김규화·정재호 씨가 수상자들이다. 정문문학상도 제정되어 20회 시상된 바 있다. 문경문협이 준 문학상은 정치색이 없고, 작품 본위로 선정·수상하여 도천문학상 수상을 효시로 하여 전국적 유명 문학상을 압도하는 저력을 보였다.
문경문협의 역대 회장들의 면모는 다음과 같다. ①김시종 ②김석태 ③황봉학 ④채만희 ⑤이만유 ⑥조향순 ⑦고성환(현재)제씨다. 역대 회장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임원·평회원 구별 없이 애회정신을 갖고 주인정신을 발휘하면 성숙한 문경문인협회가 될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32회에 걸쳐 거행된 백산여성백일장(백산 김정옥 사기장)과 영강백일장은 또한 많은 문인들을 배출했고 지역의 성예를 높힌 행사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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