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소감 - 박 윤 일
지난 겨울은 유난히 따뜻했다. 벚꽃과 개나리는 바깥분위기를 일찌감치 감지했다. 해서 재빨리 워밍업을 하고 있다가 봄이 되자마자 바로 요이 땅! 하고 포효질주하고 있다.
주위 산을 둘러보니 진달래도 만만찮다. 얼마나 급했는지 잎보다 먼저 꽃을 내밀고 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봄의 기운이 완연하다. 소월의 시 진달래꽃이 가슴에 깊숙이 와 닿는 계절이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 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 오리다” 소월은 그 많은 꽃 중에 왜 진달래꽃을 님이 가시는 길에 뿌렸을까?
그래서인지 진달래꽃은 슬프고도 아름답다.
며칠 전 담당자로부터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선작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나의 글은 형편없다.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을 잘 묘사한 것도 아니다. 감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표현력에 참고할 만한 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출신도 촌놈이지만 글 솜씨도 여전히 촌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들의 잘 쓴 글을 볼 때면 어쩌면 그토록 맛깔나고 세련되게 잘 써는지 부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남루하기 짝이 없는 글을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뽑아주니 그 배려의 자비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 이유를 짐작해 보건대 아직도 주제파악을 하지 못하고 겁 없이 신춘문예에 도전하니 나의 용기가 기특해 보였을 것이다. 아니면 내가 글을 잘 쓰지 못하니 앞으로 글이라도 가까이 해서 잘 지내보라는 격려차원의 은전일 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신문문예의 당선은 나의 인생에 멋진 봄소식이 될 것이다.
주요약력
연세대 대학원 석사
중앙대 법학박사과정 수료
경북대,국립충주대 교수
당선작 - 살아생전 대청봉
김형 일행이 강원도 설악산 대청봉에 간다는 말을 듣고 별 생각없이 따라가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일행에 합류했다.
가는 도중 일행 중 한 사람이 항간에 “살아생전 대청봉”이라는 말도 있다면서 대청봉 산행이 쉽지 않다는 말이 대화 중에 간간이 흘러나와 다소 지레겁을 먹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자 일행도 있는데 사내대장부인 내가 못가랴하는 생각으로 조여맨 등산화 끈을 다시 한 번 꼭 조여매고 따라 붙었다.
그런데 이동하기도 쉽지 않은 산길을 몇 시간 동안 휴식도 없이 정신없이 올라갔는데도 목적지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흔히 하는 말로 이번 산행은 장난이 아니었다. 몇 시간 안에 끝나는 그 전의 일반 등산처럼 생각한 것이 큰 오산이었다. 백담사에서 대청봉까지는 편도로만 7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김형은 평소 갖가지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해서인지 선두에 서서 사정없이 밀어붙였다. 정말 대단한 체력을 가진 친구였다. 역시 김형은 어느 면에서나 선두 주자가 될 자격을 확실히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들의 고충은 아랑곳 하지 않는 김형의 무자비한 추진력 덕분에 우리는 통상 소요시간보다 1시간을 앞당긴 6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적지의 8부능선에 있는 봉정암에 이르렀을 때 이미 몸이 녹초가 되어있었고 마지막 코스인 대청봉까지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여 올라갔다.
그리하여 김형 일행들 덕분에 ‘살아생전 대청봉’이라는 말이 있다는 대청봉을 정복하여 팔자에도 없는 소시민의 꿈을 이루게 됐다. 대청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한 마디로 별천지였다. 사방으로 운무에 둘러싸인 기암괴석의 산봉우리는 천하의 비경을 연출하여 ‘천국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하는 감탄사를 절로 자아냈다.
대문호 정비석선생이 비로봉 정상에 올라 “천하는 이렇게 광활하고 웅장하고 숭엄하던가”라고 경탄했다지만 대청봉도 그 어디에 비겨도 뒤지지 않는 천하의 비경을 과시했다. 정상에서 맛보는 경이로움과 신비감은 한 동안 자리를 떨 수가 없게 만들었다. 이 장관은 神과 인간의 영역을 분명히 구별케 해주었다. 두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봉정암산사로 내려왔다. 이 산사는 한때 人口에 회자되던 백담사의 부속암자로 신라 선덕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였으며,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보존되어 있어 더 유명하단다. 날이 저물어 수백여명의 등산객과 봉정암산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해병대 훈련이 아무리 심하다고 하여도 여기서와 같은 숙박훈련은 하지 안 했을 게다. 작은 방마다 수십명씩 배정되었는데 마치 인간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봉정암에 올라온 수많은 등산객은 당일 하산이 불가능하기에 어디에서라도 숙박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봉정암에서 등산객을 배려하여 얼마간의 추가 간이숙박시설을 마련해 놓기는 했지만 그 많은 등산객의 잠자리를 해결하기에는 한마디로 역부족이다. 발냄새, 땀냄새, 주인없는 가스냄새(방귀) 등이 코를 찔러 이 상황은 군복무시 밀폐된 공간에 가스를 풀어놓고 인내력을 시험하는 화생방훈련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고요한 밤 중 비좁은 방에서 여기저기 코고는 소리는 헬리콥터 지나가는 소리를 방불케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예민한 나는 거의 한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하산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캄캄한 밤중에 산속에서 이동은 시야가 불과 몇 미터 앞도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실종내지는 추락사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 일행은 밤이슬을 피해 종각 옆에 겨우 보금자리를 잡았지만 기온이 점차 떨어지는 산속의 기온특성 때문에 사시나무 떨듯이 떨면서 새벽에 이르러서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새벽예불을 위해 스님이 종각의 범종을 타종하는 바람에 귀가 떨어져 나갈 뻔 했다며,지난 밤 숙박의 고충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토로하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하산을 준비하기 위해 봉정사 마당에서 워밍업을 하며 몸을 점검한 결과 왼쪽 무릎이 구부릴 때마다 조금씩 통증이 왔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오세암쪽으로 가보지 아니한 방향으로 돌아서 하산하자는 제의를 했지만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혼자 그저께 오던 길로 천천히 하산했다. 하산하는 길에 명경지수같이 맑디맑은 시원한 계곡물에 몇 차례 발을 담그고 등산할 때 제대로 맛보지 주변경치를 둘러보며 마음껏 여유를 누려보았다. 고요한 산속에 산새와 계곡물 소리가 잠시나마 탈속을 느끼게 해줬다. 이 따끔 바위 위를 날렵하게 뛰어다니는 다람쥐가 행인에게 반갑다는 인사라도 하듯이 연신 앙증맞은 재치를 부리며 귀여운 눈길을 보냈다. 대여섯 시간이 걸려 하산을 마무리하며 소위 등산인들의 로망인 ‘살아생전 대청봉’의 소원(꿈)을 이루게 됐다.
이번 등반을 통해 이 세상엔 고난없이는 영광도 없음을 새삼 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