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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광복회 안동시지회-독립운동기념관 협약, 독립 운동 유공자 예우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4.04 20:18 수정 2019.04.04 20:18

‘민족이 살아있는 한 반역에 대한 응징의 시효는 없다’란 말을 하면서, 김구(金九)선생 암살범 안두희(安斗熙)을 찾아, 민족의 독립정신에 따라 처단한, 정의봉(正義棒)을 든 박기서(朴琦緖) 의사(義士)의 말이다. 독립운동가를 지원하고 그에 따른 예우·지원을 다하는 것은, 독립운동을 한 후손들의 책무이다.
독립한 나라에서도, 과거 친일분자들이 득세하는 바람에,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은 잘살기는커녕,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다. 근래에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었다. 여기에 등재된 친일분자들의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득세하고 있는 판이 아닌가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빌붙어 작위를 받고, 수많은 토지를 물려받은 이들은 지금도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면, 민족의 정기가 있다면, 민족의 이름으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지원과 예우에 쓰도록 해야만 마땅하다. 우리는 아직까지 한국사의 기술에서, 민족의 정기가 살아 있는, ‘독립운동사’가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정도이다.
지난 3월 국가보훈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한, ‘2019년 업무보고’에 따르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계기로 역대 최대 규모로 독립유공자를 발굴, 포상한다. 광복 후 좌익 활동 경력자 298명을 포함해, 독립유공자 포상 보류자 2만4천737명도 재심사한다.
좌익 경력자 중에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은 1919년 의열단을 결성했다. 1938년 조선의용대장,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 1944년 임시정부 군무부장(국방장관)과 국무위원을 지냈다. 약산 김원봉이 대한민국 정부수립당시, 일제 악질 친일형사인 노덕술(마쓰우라 히로;松浦鴻)에 의해 수갑이 채워져, 수도경찰청장(장택상) 앞에 끌려갔다 돌아와서, ‘여기서는 왜놈(친일 다른 이름)들 등쌀에 죽을지도 몰라’하면서 사흘 꼬박 울다가 이북으로 가버렸다.(리영희 고증)
국가보훈처는 김원봉에 대한 서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보훈처 자문기구인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는 김원봉처럼 남에서도 북에서도 사상이나 정치적 이유로 독립운동 공적을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독립유공자들을 적극 서훈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약산은 월북 후 중립화 통일 방안을 주장했고, 노동상 등을 지냈으며, 1958년 숙청당했다. 김원봉은 독립기념관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펴낸,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특별판)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편찬위원장인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김원봉 선생 원고도 준비했는데, 지금 정치적 상황에서 넣었다가는 출간할 수 없을 것을 우려해 할 수 없이 뺐다고 했다.
안동시시설관리공단·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광복회 안동시지회는 지난 2일 시설관리공단 회의실에서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독립운동 유공자 지원 및 예우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은 권석순 안동시시설관리공단 이사장과 김희곤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 손병선 광복회 안동시지회장, 세 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지역 내 독립유공자들을 위해 상호 협력한다. 이번 협약체결로 세 기관은 지역 내 독립유공자들을 위한 인적·물적 지원과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상호 연계해 추진한다. 그 밖에 다양한 노력과 전시·행사, 홍보 활동 등, 세 기관의 사업 활성화에도 상호 협력한다. 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시설관리공단은 이달 중 지역 내 독립유공자 70개 취약가구를 독립운동기념관과 광복회로부터 추천받는다. 공단이 보유한 전문기술 인력을 활용해, 각 가구의 시설 안전점검과 보수를 추진한다. 아울러 공단은 고객 감동의 친절 서비스 제공과 꾸준한 경영혁신을 통해, 고객과 지역에 최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지방공기업이 되도록 적극적인 사회 봉사활동을 전개한다. 독립운동가를 지원하고 예우하는 것은 안동시만의 일이 아니다. 민족의 이름으로 예우·지원하고, 반대로 악질 친일분자를 색출하여, 처단에 시효를 없애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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