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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강사법 논란, 없는 것은 돈이 아니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12.18 20:26 수정 2018.12.18 20:26

이 상 룡
부산대 철학과 강사

교수가 직장인이 됐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자칫 직장인을 모욕하는 말일 수도 있는데, 이때의 직장인은 교수와 대비되는 의미의 직장인이고, 상사의 명령과 지시를 충실히 수행한다는 의미로서의 직장인을 말한다. 대학교수들이 직장인처럼 상부의 지시를 받아서 일을 하는 자들이어서는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 대학의 교수들을 월급쟁이 직장인으로 만드는 자는 누구일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자신은 그저 상부의 지시를 따라 유태인을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보냈을 뿐이라고 말했고, 한나 아렌트는 그런 아이히만에게 ‘무사유의 죄’를 물었다. 사유한다는 것은 질문하는 능력이고, 질문한다는 것은 의심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도 말했듯이 의심한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아렌트는 “타인이 무엇을 겪는지 상상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표현했다. 공감은 타인의 고통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이는 맹자가 말했듯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이 무엇을 겪는지 상상하지 않으려면 의식적인 의지가 있어야 하고, 이것이 바로 악인 것이다. 우리는 언제 악을 저지르게 될까. 아렌트에 의하면 유태인이 겪게 될 고통을 상상하지 않을 때가 아니라 그 고통을 상상하지 않으려고 할 때 우리는 악이 된다.
대학에서 강사는 없는 존재로 간주돼 왔다. 엄연히 대학의 교육과 연구를 맡고 있는데도 대학은 이들을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강사법이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자 대학들은 강사의 수업을 전임교원들에게 떠넘기고, 대형 강좌를 만들고, 사이버수업을 확대하고, 졸업이수학점을 축소하겠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강사들은 대량으로 해고될 것이다. 해고되는 강사들은 대다수가 인문·사회·예술대 강사들이 될 것이고, 학생들은 인문·사회·예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할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이고, 이는 이 나라의 인문학과 사회과학과 예술의 종말이 다가옴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대학의 주인이라고 자처해 왔던 대학교수는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대학의 파괴를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 대학은 강사를 해고하기 위해 학생들의 학습권과, 대학원생의 미래와, 대학교수들의 노동조건, 삶의 질을 파괴하려 한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강사들은 대학에서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강사법은 강사의 문제가 대학의 문제이고,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 점을 확인해 주고 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를 유대인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은 죄가 아니라 유대인들과 함께 살지 않기로 선택한 죄라고 말한다. 대학의 교수들은 강사들과 함께 살지 않기로 선택할 것인가.
수년 전 경희대의 후마니타스 강사였던 채효정 선생은 대학에서 해고된 뒤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라고 물었다. 대학교수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대학을 그저 대학본부의 것이라고 할 때 강사들의 대량해고는 필연적이다. 대학은 강사한테 쓸 돈이 없다고 하지만 정작 없는 것은 강사들과 함께 살려는 의지다. 그러니 이 시대의 대학교수들에게 필요한 것은 질문하는 능력이다.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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