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온 지 100년이 넘었다. 그동안 전기기술 또한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설비건설이나 운용기술은 상당히 앞서가고 있지만, 핵심 소재나 부품은 아직도 많은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정보화·디지털화가 본격화됨에 따라, IT 기술과 결합된 전력시스템 운용, 고기능 전기기기 등 신제품과 신기술이 하루가 멀다하고 등장하고 있다.
전력시스템과 전력시장도 데이터 처리 및 전송기술의 도입으로 실시간 제어, 운용, 거래가 가능한 스마트시스템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근래 들어서는 수요자원, 에너지 저장장치(ESS), 전기자동차(EV), 수소에너지 등 새로운 자원이 4차산업 혁명, 그린뉴딜정책으로 구체화 되면서 에너지산업을 넘어서 경제성장을 이끌어 나갈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전력산업에서 기술개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당시 전력산업을 독점하던 한국전력은 기술개발 전담부서를 두어 기술기획과 집행을 주도하였으며, 한국전기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등 이공계 국책연구기관과 한전 R&D 센터인 전력연구원, 그리고 일부 대학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1996년 시작된 ‘원자력연구개발기금’이 원자력분야 기술개발을 주도하였으며,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만들어진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통해 전력분야 기술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기반기금은 이전에 한전에 의해 수행되던 공익적 사업에 해당되는 부분을 별도재원으로 분리한 것으로, 연구개발, 전력수요관리, 신재생에너지 보급, 발전소 주변지역지원, 농어촌 지원 등 각종 지원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전력기술은 크게 원자력, 발전기술, 전력기기, 전력계통, 전력경제 분야로 구분되며, 전력경제를 제외하면 대부분 전력생산과 융통에 필요한 설비개발과 운영을 위해 필요한 개발 및 적용연구에 집중되고 있다. 기술개발과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개발 전략수립이나 기술수요조사, 기술경제성 등 기술정책연구가 필요하다. 1991년 전기공업 기술수요조사 및 개발전략, 1995년 중전기기 발전전략 수립, 2001년 전력산업기반기술 개발전략 수립, 전력기반조성사업 계획수립, 2005년 국가전력기술진흥계획 수립 등 기술개발계획 수립과 투자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2009년에는 에너지분야 기술개발전담기관도 설립되었다.
기술개발의 효과에 대한 이론과 실증분석의 역사는 길다. 전력산업에서 기술개발의 성과를 계량하기 위해서는 미시경제학의 생산함수를 이용하여 생산요소별 기여도를 측정하는 방식이 많이 사용된다. 즉, 총요소생산성(TFP, Total Factor Productiviry)을 통해 자본, 노동, 기술 각각의 요소별 기여도를 식별하므로써 투자의 효율성에 대한 객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접근은 1990년대 중반부터 우리 전력산업에 대한 실증분석을 통해 시도되었다.
신기술의 도입과 확산은 기술규제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매번 논란이 되고있는 전력수급계획도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기술규제에 해당한다. 지금도 수급계획의 주된 기능은 언제 어떤기술(전원)을 얼마만큼(용량) 허용할 것인가이다.
계획수립의 절차와 기준이 있지만, 전원믹스와 신규물량의 결정은 결국 계획수립 주체의 의지나 판단에 좌우된다. 과거 한전의 독점체제에서는 적정 전원믹스를 통해 공급기술을 선택함으로써 전력산업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특히 독점체제에서는 기술규제가 전력산업의 총 요소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도 활용되었으며, 실증분석을 통해 효과검증도 이루진 바 있다. 이는 최소예비력, 발전소 이용율 극대화 등을 통해 자원의 최적화를 유도함으로써 공급비용을 낮추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2000년 이후 발전부문이 개방되었고, 몇 년전부터는 온실가스 및 환경제약과 재생에너지 공급의무라는 또 다른 형태의 기술규제가 작동하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정책에 의해 도입된 규제에 대해서도 이들 기술규제가 전력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전력산업의 기술혁신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해 나갈 것인가를 검토해본다면, 먼저 기술기반 사회를 대비한 기술개발 패러다임 전환과 새로운 기술수요의 반영이 필요하다. 전력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미래사회 적응을 위해서는 빅데이터, IoT, AI기술의 활용이 필요하다. 또한 환경, 에너지효율, 분산에너지, 안전 등 국민복지와 관련된 기술에 대비해야 한다. 소비자서비스와 전력품질 향상을 위해 필수적인 시스템기술도 달라진 환경에 맞추어 나가야 한다.
전력기술은 기술수요자가 국가 또는 공공인 경우가 많다. 전유성이 없는 기술개발은 ‘사적 인센티브’를 유발하기 어렵다. 시장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공익성 기술공급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된다. 선진국에서도 시장기능에 의해 공급되기 어려운 공익적 기술개발 재원을 별도기금으로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최근 전력산업을 비롯한 규제산업은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전기, 가스, 열 등 에너지 업종은 물론이고 통신 등 타 산업과의 통합도 보편화되고 있다. 전력산업이 전력공급자로써의 역할을 넘어 새로운 산업으로 거듭나고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경직된 산업구조를 바꾸고 시스템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우선 재생에너지, 분산자원, 수요자원 등 새로운 자원기술과 ESS, 전기차, 수소에너지 등 새로운 저장기술의 활용을 높여가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전기, 가스, 열의 수급조정과 에너지 변환을 통해 최적의 에너지시스템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혁신은 단순한 기술개발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만들 때 의미가 있다. 눈앞의 문제와 작은 이익에 급급하여 변화를 막는다고 큰 물줄기가 바뀌지는 않는다. ‘기술혁신이 경쟁력의 원천’이라는데는 이론이 없다. 기술혁신을 통해 산업성장과 경쟁력을 높이고 전력산업의 미래를 여는 탄탄한 길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