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잠식된 2020년이 저물고 2021년이 밝았다.
올해 2021년은 2015년 파리협정에서 약속된 신기후체제가 본격적으로 출범하는 해이다.
이를 대비하여 파리협정의 권고에 따라 각 당사국들은 2020년까지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 Long-term Low greenhouse gas Emission Development Strategy)을 수립하였으며 기후변화 가속화에 대한 위기감으로 많은 국가들이 탄소중립 선언에 동참하였다.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발맞춰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9월 제75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LEDS 수립과 NDC(국가감축목표,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갱신을 약속하였으며, 10월에는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우리 정부는 12월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2050년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을 수립하여 UN에 제출하였으며, 5년마다 강화된 국가감축목표를 제시해야 하는 파리협정의 진전원칙에 따라 갱신된 NDC도 함께 제출하였다. 그럼 이제 우리나라도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탄소중립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도 남은 잔여 배출량은 흡수를 통해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하는 아주 도전적인 과제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 3억 만t, 2000년 5억t 수준에서 점점 증가하여 2017년 7억t을 초과한 상황으로, 30년 전인 1990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그 이후 30년 동안 증가한 배출량의 80% 정도가 더 줄어들어야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배출량의 87%가량은 에너지 부문에서 배출되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수 불가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파리협정 이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전환 로드맵(2017년 10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2017년 12월),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2019년 6월) 등을 발표하며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 주된 내용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확대와 탈석탄, 탈원전이다.
지금까지의 에너지전환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제시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는 2030년에 20%, 2040년에는 30~35% 수준이며, 현재 6.5%(2019년 기준) 정도에 불과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고려하면 이 목표 수치들도 도전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에서는 2040년 발전비중 목표를 30~35%로 설정한 근거로 35% 초과 시 변동성 증가로 인해 계통 부담이 가중된다는 점을 들었으며, 입지 잠재량의 경우 재생에너지 35% 확대 시 입지 잠재량의 65~77%, 40%까지 확대 시에는 81~83%까지 활용될 것으로 예상하여 에너지전환 목표 달성 과정에 수반되는 문제들을 함께 고려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기존 목표도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하더라도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절대적인 목표가 추가된 지금, 기존의 목표 수치들이 상향되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는 LEDS 수립 과정에서의 의견수렴을 위해 구성한 기후·에너지 분야 전문가 포럼에서 제안된 ‘2050 저탄소 사회비전 포럼 검토안(’20.01.)’에서도 알 수 있다.
이 검토안에서 제시된 저탄소 전환 최대 추진안에서는 205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60%까지 증가시키고 석탄화력 발전비중을 4%로 줄여도 탄소 배출량을 2017년 대비 75% 수준까지만 감축할 수 있으며, 나머지 1억 7,900만t의 탄소를 추가 감축하거나 흡수, 제거해야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시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파리협정 이후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하지 않아 다른 국가들 대비 급격한 감축경로를 따라야 함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가들의 제안은 실제 보고서에 반영되지 않았다. 갱신된 NDC 보고서에서는 파리협정 당시 제출한 2030년 배출전망치(BAU, Business As Usual) 대비 37% 감축이라는 상대적인 감축 목표를 2017년 온실가스 총배출량 대비 24.4% 감축이라는 절대량 목표로 변환하고 국내 감축 비중을 확대하여 우리나라의 감축 의지를 명확하게 표명하고 국제사회의 신뢰도를 높였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량 목표로 바꾼 2017년 대비 24.4% 감축 목표도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보면 이전의 상대적 감축 목표와 동일한 5억 3,600만t이며, 이 절대량 목표 수치로의 변환은 탄소중립 선언 훨씬 이전인 2019년 12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 제25조에 반영하여 이미 법제화가 완료된 상황이다. 또한 국내 감축 비중 확대도 2018년 7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안에 이미 담겨있던 내용으로, 탄소중립과 관련된 새로운 목표가 추가된 것은 없다.
정부도 이러한 한계점을 인식하여 대통령 직속의 ‘2050 탄소중립 위원회’ 설치와 2021년 6월까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마련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2025년 이전에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보고서에 함께 담은 것으로 보인다.
상황적으로는 2019년에 수립된 제2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 등 굵직한 기후변화 관련 중장기 계획들을 수립한 지 1년 만에 그 목표들을 바꾸는 데 무리가 있었을 것이라 공감은 된다. 또한 탄소중립 선언이 2020년 하반기에 이루어져 기존에 작업해왔던 내용들을 갑작스럽게 변경하고 사회적 합의까지 도출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을 것이라 예상도 된다.
반면 2020년 1월에 제안된 ‘2050 저탄소 사회비전 포럼 검토안’에서 전문가들은 저탄소 사회 전환을 위해 지속가능한 탄소중립 국가경제 구현이 필요함을 강조한 바 있다. 이후 수개월에 걸친 온라인 설문, 전문가 의견 수렴, 국민 토론회 등의 의견수렴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의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과 탄소중립 사회 전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국회에서는 2020년 9월 ‘기후위기 비상대응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여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 권고 수준으로 상향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소중립을 위한 과감한 목표를 담지 못한 데에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기후·에너지 정책은 장기적인 시계로 가져가야 하지만 그 목표는 최대한 빠르고 확실하게 수립해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선도적인 국가들은 이미 205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탄소중립을 법제화하는 등 장기시계를 기반으로 기후변화 입법을 재편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2019년 12월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을 통해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기존 1990년 대비 40% 감축에서 50~55% 감축으로 상향 조정하였고, 그린딜의 법적 구속력 확보를 위해 유럽 기후법(European Climate Law)을 제안한 상황이며, 탄소누출(Carbon Leakage)을 줄이기 위해 탄소국경세 도입도 예고하고 있다.
다만 우리는 아직 탄소중립을 선언한 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그린뉴딜은 투자 위주의 계획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목표와 전략이 부재하고, 기후변화 대응 관련 법들도 최근의 국제적인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2020년 12월에 발표된 기후변화 대응 지수(CCPI, 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전체 61개국 중 53위의 성적을 받아,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기후변화 대응 후진국으로 평가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실질적인 탄소중립을 위한 과감한 목표 설정과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기후변화 대응 후진국이라는 평가에서 끝나지 않고 경제·사회적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을 5년 뒤로 미룬다는 것은 탄소중립을 실천할 의지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탄소중립이 선언적인 정책으로 그치지 않고 진정한 탄소중립 사회가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 정부의 과감한 목표 설정과 빠른 결단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