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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멀어진 고향역…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12.21 18:27 수정 2020.12.21 18:27

김 휘 태
전 안동시 풍천면장

부모님 전상서, ‘올해는 코로나가 만연하여 고향에 계신 부모님 면전에 찾아뵙지도 못하고 이렇게 멀리서 안부인사 드립니다. 몸은 멀리 타향에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고향에 있습니다.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옥체만강 하시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2020년 연말은 이렇게 따뜻한 마음의 편지로 부모님과 친지들에게 송구영신을 기원해야 되겠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 참으로 황당할 뿐이다.
이러한 미증유의 4차 산업혁명시대와 비대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마스크를 벗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사물인터넷 시대에 얼굴이 비밀번호(공인인증)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면을 쓰고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야말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마법의 세상으로 이끌려가는 것 같다.
하회탈처럼 웃는 세상이 될지, 악마의 탈처럼 무서운 세상이 될지, 두렵기도 하고 호기심에 빠져들기도 한다.
70년대 국내에선 산업화로 해외에선 중동건설과 월남파병으로, 타향에서 이역만리 타국에서 정든 고향을 그리워하며 피땀 흘려 일했던 시절이다. 그 때 그 시절에 뼈에 사무친 그 말,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만은 고향(그대)에 있다’고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던 추억이 아련한데, 지금 새삼스럽게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라고 말하니, 가슴이 덜컹 무너지는 충격에 휩싸인다.
또 다시 무엇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라는 말인가?
생각해보니 지금은 고생 정도가 아닌 공포가 엄습해온다.
그 때의 멀리 고생길은 피땀 흘려 희망을 기약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멀리는 고생길이 아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쳐올 수 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그 때는 우리 스스로가 잘 살기 위해 떨어져야 했던 시절이고, 지금은 우리가 죽음의 바이러스19와 떨어져야 하는 상황이 전혀 다른 것이다. 과거에 돌아올 수 있었던 멀리가 아닌, 지금은 어쩌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생이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바이러스를 퇴치하지 못하면 다른 동물처럼 흩어져 살도록 진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50억 년 전에 우주가 탄생하고 바닷물에서 생명이 태어나 오늘날 우리 인간으로 진화해온 것을 보면, 앞으로도 어떤 변화를 겪을지 알 수 없다. 또한 인간은 바다에서 육지로 나왔지만, 고래는 육지에 나왔다가 바다로 되돌아간 것처럼, 인간의 비대면(마스크) 사회가 회복이 될지 모를 일이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호랑이, 고래 같은 강자는 혼자서 살아가고, 작은 약자 동물들은 집단으로 협력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므로 자유자재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밀림의 원주민들 같이 흩어져 살면 도시와 같은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어쩌면 21C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얼마든지 가능할 수도 있는 현실적인 상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한편, 우주생명과학시대를 생각해보면 인간이 지구에서 흩어져 사는 것 보다 우주로 나아가 흩어져 살 가능성도 많다고 생각된다. 인간들이 무분별한 산업개발과 대도시생활로 자연을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것은 바이러스19와 같은 공멸을 초래하므로, 이제는 자연·우주와 함께 분산하여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역발상의 미래가 희망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최강자인 공룡이 멸망한 것은 지구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2~3분만 숨을 쉬지 못하면 곧바로 죽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
과거에는 자연재해로 일부지역이나 주민들이 멸망하였지만, 오늘날의 고도문명사회는 자연재해는 물론 인간재해로도 거대한 지구촌 전체가 일순간에 마비되고 멸망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 바이러스19 퇴치에 우리 모두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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