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분기와 3분기 합계출생률은 0.84명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81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2020년 합계출생률은 1분기 0.9명, 2분기 0.84명, 3분기 0.84명으로, 올해 전체 출생아 수가 30만명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성 1명이 평생 1명의 자녀도 출산하지 않는 상황이 현실이 된 것이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인구감소의 시대가 열렸다.
정부는 세 차례나 5개년 단위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였고, 얼마 전에는 2021년부터 시행될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시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정부는 15년 동안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시행을 위해 약 225조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인구감소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인 계획의 내용을 뜯어보면, 저출산·고령사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과는 무관한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사회정책이 나열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첫째, 시원스레 말은 못 했지만 저출생 현상은 정책 한두 개로 해소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낮은 출생률은 다양한 사회문제의 상호작용이 빚어낸 부정적인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지, 저출생을 유발하는 확실한 한 두 가지 원인을 파악하여 그것을 해소 또는 완화하는 정책을 펼치는 처방적 접근의 대상이 아니다.
당신이라면 정부가 실업부조를 도입한다고, 임대주택을 늘린다고, 아동수당을 준다고, 무상보육이 제공된다고,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아이를 낳겠는가? 자녀출생은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의 영역에 속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정부가 나열한 정책들 각각은 출생률 제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고유한 정책목표를 가지고 있다.
둘째, 양심적으로 아랫돌 빼 윗돌 괴고 윗돌 빼 아랫돌 괴면서, 인구감소를 해결해줄 만능 정책을 시행하는 척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노년부양비가 2060년에 80%를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최상위 수준이다. 또한, OECD는 급속한 고령화로 인하여 2005년에서 2020년까지 한국의 평균 잠재성장률은 3% 수준이었지만, 2020년에서 2060년까지 평균은 1.2%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마디로 부양해야 할 노인의 수는 증가하는데, 이를 떠받칠 재원을 확보할만한 성장동력은 부실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인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 파격적으로 기초연금액을 인상할 수도, 청년 실업이 심각하니 화끈하게 청년수당을 도입할 수도, 자녀 양육 가구의 경제적 부담 경감과 아동복지 제고를 위해 아동수당의 대상과 액수를 단번에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초연금을 늘리자니 아동수당을 줄여야 하고, 청년수당을 주자니 기초연금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예산제약 하에서 정책의 우선순위를 고려한 효율적인 예산 집행과는 거리가 먼 백화점식 정책 나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중차대한 인구감소의 위기를 목전에 두고 특별대책을 발표하는 대신 하던 일들을 좀 더 열심히 해보겠노라고 솔직하게 밝히기가 멋쩍었던 것이다. 전임자보다 대책을 담은 보고서의 두께가 얇다면, 국정수행능력 혹은 업무수행능력을 지적받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니 서류상으로는 15년 동안 세 차례의 계획을 수립하여 225조원을 투입했으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의 탈을 쓴 ‘사회부처가 하는 일 백과사전’과 출생률이 급감하는데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는 질타만 남겨진 것이다.
이제 저출생은 대응(對應)해야 하는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적응(適應)해야 하는 사회적 조건이다. 그러니 벽돌보다도 무거운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부여잡고 뚝뚝 떨어지는 출생률을 마주하며 한숨을 쉬기보다는 주어진 사회적 조건에서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사회 전체를 두고 봤을 때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인 인구집단이 누구인지,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분배의 원칙을 세워야 하는지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구체적으로, 사회정책을 망라하여 나열하는 대신 생애주기별로 제공되고 있는 정책이 무엇인지, 사각지대가 있는 것은 아닌지 분석해야 한다. 사회정책의 투입이 집중되는 연령대가 있을 수도 있고, 사회정책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연령대가 있을 수도 있다.
고르게 사회정책이 제공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공방식(해당 집단 전체에게 지급하느냐 일부에게 지급하느냐 등)으로 인해 비효율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반드시 필요한 지원을 중심으로 사회정책 수행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뿐만아니라 평등(equality)이 아닌 공평(equity)에 근간을 둔 분배의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과 지방에 사는 사람에게 똑같은 급여와 서비스를 주는 것은 평등일지는 몰라도 공평은 아니다. 대한민국 어느 곳에 살든 급여의 액수와 서비스의 양은 달라도 똑같은 정책효과를 보장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평하게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이러한 분배의 원칙은 지나친 평등에 대한 강조로 발생할 수 있는 재원 배분의 비효율을 완화하고, 고령사회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단순한 것이 최고는 아니다. 하지만 최고는 늘 단순하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건축가인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가 한 말이라고 한다. 정책설계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정책은 늘 단순하다.
사각지대가 있는지, 상대적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지, 동일한 정책효과가 발생할 수 있도록 자원이 할당되고 있는지, 생산인구 감소로 혹은 일자리의 감소로 재원 확보가 어렵더라도 정책이 유지될 수 있는지…. 개별 정책의 기본을 살피며 저출생에 적응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