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는 화재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119에 ‘신고’해야 한다고 배웠다. 물론 옳은 말이다. 하지만 화재전문가인 소방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신고’보다 현장에서의 ‘대피’의 중요성을 제일 강조하고 싶다.
소방공무원은 철저한 소방 활동으로 화재를 신속하게 진압해 재산상의 피해를 줄이도록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만약 인명피해가 조금이라도 발생한다면, 그 현장 활동은 실패한 화재진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외부기관에 교육훈련과 강의를 나갈 일이 자주 있다. 그때마다 가장 강조하는 것이 ‘인명 대피’이다. 머리로 보다 몸으로 익힌 훈련이 무의식에 오래 남는다는 믿음으로서, 여러 번 반복해서 실습을 시키고는 한다.
만약 화재 등 위기 상황 발생 시, 시민들이 ‘대피’도 잘하고, 119‘신고’도 잘 하고, 초기 ‘진화’까지 잘 한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그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필자는 ‘대피’가 제일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신고’는 ‘대피’하고 나서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도 있는 일이다. ‘화재 진압’은 소방공무원이 제일 잘한다. 하지만 ‘대피’를 통해서 내 목숨을 지키는 것은 아무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화재 발생 시 요구조자가 유독가스에 질식되어 사망하거나 신체상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가장 빈번하다. 그 위험성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로서 2017년 12월 21일에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를 들 수 있다. 당시 2층 여성사우나에서 무려 20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는데, 비상구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출입구는 고장이 나서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았다. 희생자의 대부분이 탈의실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대피를 안내해 줄 사람을 기다리다가 화를 입은 것이다.
반면에 2019년 6월 26일에 발생한 서울 은명초등학교의 경우는 대피가 잘 이루어진 모범적인 사례이다. 당시 교사 두 명이 백여 명의 학생과 직원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화장실에 피신해 있다가 무사히 구조되었다. 당시 소방 인력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불길이 건물 전체를 휘감고 있었는데, 만약 조금이라도 대피가 지체되었다면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던 화재였던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경주에는 요양병원이 많다. 요양병원에는 거동이 불편하고 연세가 많은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화재 발생 시 심각한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등 안전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주소방서에서는 관내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자위소방대 경진대회와 인명대피훈련 실시, 간부공무원 요양병원 현지 방문 지도 등 화재예방과 대피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안전의 시작은 ‘대피’이다. 기억해야 할 대피 요령은 먼저, 화재의 징후를 발견하면 비상벨을 누르고 ‘불이야’라고 목청껏 소리 질러 주위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둘째, 피난구가 가까운 경우에는 코와 입을 막고 신속하게 대피해야 하며, 피난구가 먼 경우에는 젖은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벽을 짚으며 낮은 자세로 대피해야 한다.
셋째, 연기는 아래에서 위로 확산되기 때문에 불가피한 경우 비상계단을 통해서 옥상으로 대피한다. 하지만 화재 발생 시 정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승강기를 타서는 절대 안 되며, 무조건 계단으로 대피해야만 한다.
넷째, 안전한 곳에서 주위에 도움을 청하고 119에 신고하자. 그러므로 불나면 대피 먼저다. 꼭 기억하자.
불은 소방관이 가장 잘 끈다. 119신고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사람이 잘 한다. 하지만 인명대피는 화재가 발생한 대상물의 관계인이 가장 잘하고 가장 ‘대피유도’를 잘할 것이다. 앞으로는 나 혼자만 사는 나 홀로 ‘대피’가 아니라 다함께 사는 모두 함께 ‘대피’를 하도록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