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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증거 기반 정책 마련 위한 데이터 공개의 중요성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11.23 18:25 수정 2020.11.23 18:25

조 인 영 부연구위원
국회미래연구원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지원금의 지급을 둘러싼 보편 지급과 선별 지급 간의 논쟁은 보편복지와 정부 재정의 건전성 간의 가치판단 문제이기도 했지만, 과학적 증거에 대한 논의이기도 했다.
정부 재정 문제로 인해 전 국민 보편 지급이 어렵다면, 코로나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본 계층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선별할 수 있는가도 논쟁의 핵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책 수립에 앞서 필요한 두 요소는 현상에 대한 정확한 파악, 그리고 그 기반 위에서 정책의 목표를 결정하는 것이다.
우선, 어떤 정책을 뒷받침하는 근거란 결국 현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존재해야만 비로소 어떤 정책이 필요한, 또는 필요하지 않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어떤 새로운 정책을 도입한다면, 그 정책이 원하는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느냐에 대한 과학적 지식 및 기존 제도와의 조응을 고려한 맥락적 판단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정책의 목표란 필연적으로 가치판단을 수반한다. 가령 불평등 개선을 위한 정책이라면 현재의 불평등 수준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결국 현 수준의 불평등은 너무 높으니 개선이 필요하다는 (국민의 대리인인)정치인들의 가치판단을 기반으로 한다.
가치의 문제는 일단 차치한다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 도입의 근거가 되는 증거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이는 많은 경우 다양한 통계의 형태로 우리의 눈앞에 제시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이는 수치 자체가 우리에게 단일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소득 하위 10%와 소득 상위 90%의 소득을 비교한 결과 전년도 대비 불평등 수준이 개선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소득 하위 20%의 소득과 소득 상위 80%의 소득을 비교한 결과는 전년도와 비교하면 악화하였다고 하자.
전자의 통계만을 확인했다면 이는 분배지표 상 긍정적인 사인이지만, 후자의 통계에 주목한다면 이는 분배지표의 악화라는 부정적인 사인으로 해석된다. 결국 소득 불평등 수준에 관한 판단은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에 내려질 수 있으며, 이는 많은 부분 이론적 시각과 해석에 기초해 현실을 분석하는 사회과학자들의 몫이다.
지난 10월, 통계청이 ‘통계등록부’ 구축을 위한 밑 작업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발표되었다. 통계등록부란 통계 작성을 위해 필요한 개인, 기업 등에 대한 각종 정보를 모아놓은 통합 데이터베이스이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기존에 통계청이 가진 조사 자료에 각 부처가 정책 실행 과정에서 갖게 된 행정자료를 수집, 합산하여 통합된 데이터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 정책의 밑그림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통계청은 통계등록부의 도입 근거를 담은 통계법 개정안 제출을 위해 기획재정부와 세부 내용을 협의 중이라 한다.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통계가 부처의 벽을 넘어 서로 공유되기 어렵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고 종합적인 자료를 구축, 보관하는 허브 역할을 통계청이 수행하고자 한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이에 앞서 통계청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학술적 분석을 목적으로 하는–궁극적으로는 증거기반 정책 수립의 근거가 되는-통계 자료들의 개방과 활용에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통계청 홈페이지에는 ‘국가통계 발전을 선도하며, 신뢰받는 통계생산으로, 각 경제 주체에게 유용한 통계정보 제공’이라는 기관 미션과, ‘국가통계 개방 및 통합 서비스 확대, 통계 자료 융·복합을 통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데이터 허브 및 개방형 플랫폼을 구축하고 통계 생산·활용을 확대’하겠다는 핵심전략이 제시되어있다.
그러나 통계청이 연구 목적의 자료요청에 그다지 협조적이거나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그렇게 놀라운 비밀은 아니다. 정보공개청구법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통계청이 어떤 통계를 가지고 있는지조차 파악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청구하는 일이 쉬울 리는 없다. 마이크로데이터 통합 시스템(Microdata Integrated System: MDIS)을 통해 통계청 원자료를 일반인이나 학술연구자에게 어느 정도 오픈하게 된 것도 2015년 이후의 일이다.
연구자가 원자료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학술적 목적뿐만 아니라 증거기반 정책 수립의 기반이 되며, 사실관계를 둘러싼 끝없는 당파적 갈등 해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정책은 가치를 반영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증거에 기반을 둔 분석 위에서 수립, 추진되어야 한다. 숫자 그 자체가 객관적이라는 것은 사실 미신이다. 분석은 이론의 근거 위에서 더욱 탄탄해지며, 나무들에 대해 판단하면서도 숲 전체를 볼 수 있을 때 전체 현상에 대한 의미 있는 진단이 내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데이터 수집이나 1차 가공 업무는 수행할 수 있지만, 자료를 분석하고 이론의 기반 위에서 이를 해석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회과학자나 데이터 분석가들의 집단은 아니다.
학계는 기본적으로 같은 분야 전문가들의 동료평가(peer review) 위에서 신뢰를 구축해 온 집단이며, 잘못된 분석은 동료들에 의해 언제라도 쉽게 기각될 수 있다.
타 부처의 자료가 필요한 이유를 역설하고 있는 통계청이, 보유하고 있는 원자료의 학술적, 정책적 활용 역시 고민해줄 것을, 오용을 고려한 비공개보다는 개방을 통한 공익 추구 및 그 무한한 가치 확장에 더 주목해 줄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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