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능력은 천차만별이다. 인간의 존엄성엔 차별이 있을 수 없지만, 재능은 천재와 둔재가 도저히 같을 수가 없다.
1988년 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국제펜클럽 세계총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필자는 대회 기간 중에 여관에서 잠을 자면서 개근하다시피 했다. 그때 여가시간을 틈타 평소 감명깊게 읽은 소설작품의 작가를 만나 문담(文談)을 나누고, 평소 궁금하게 생각하던 작품의 대목을 작가에게 직접 물어 보았다. 소설 ‘남조선노동당’의 작가 이병주 선생과, 소설 ‘사람의 아들’을 지은 이문열 씨를 만나 환담했다.
이병주 작가께서는 ‘남조선노동당’의 여주인공 홍옥희가 실존인물인가 물었더니, 본명은 홍옥숙 씨며 작가와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만나고 있다고 했다. 남조선노동당의 실체를 알고 나니, 소설이 더욱 실감이 났다.
1967년 여름의 일이다. 필자의 첫 시집의 머리말을 시인 노산 이은상 박사님께 부탁드렸더니 혼쾌히 승낙하셨다. 내친 김에 평소 애독하던 노산 시조집을 읽고 의문을 품어 오던 시의 구절에 대한 바른 뜻을 물어 보았다. 노산 이은상 선생님이 청년시절에 친구의 부탁을 받고 결혼 축시를 지어 주었는데, 그 작품이 바로 동무생각(思友)이란다. 당시 계성학교 음악교사를 하시던 박태준 선생이 곡(曲)을 붙여 일약 명곡(名曲)이 되었다. 명곡은 그저 되는게 아니라, 좋은 노랫말과 멋진 가락이 아우러져야 하는 것이다.
내가 의문을 품은 가사 대목은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중략)’에서 ‘청라언덕’의 뜻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하기만 했다. ‘청라언덕’은 구체적인 지명인지, 아니면 무엇을 상징하는 말인지 꼭 알고 싶었지만 알 방법이 막연했다.
마침 노산 선생님 앞에 앉게 되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씀드렸다. 동무생각(思友)의 가사에 있는 청라언덕이 무슨 뜻이냐고 여쭈었더니, 구체적인 지명이 아니며, 봄이 되면 언덕에 풀이 파랗게 덮이는데, 흡사 푸른 비단을 펼쳐 놓은 듯 하여 청라(靑羅)언덕이라고 표현하셨단다. 궁금중이 확 풀려, 가슴이 후련하기까지 했다.
선생께서는 불초 가슴의 궁금증을 풀어 주시고 15년을 더 사신 뒤 1982년 초가을에 영면하셨다. 이은상 선생님 생전에 자작시 50여 편이 홍난파·박태준·김동진 선생 등 대방님들의 가락을 만나 가곡으로 작곡되어, 이 땅의 공중에는 노산 선생님의 노랫말이 햇살같이 쏟아지고 있다.
어려운 세상 살이를 가장 살맛나게 해 주는 것이 노래다. 시 한편도 노래로 태어나지 못한 시인이 대부분인데, 노산 이은상 선생은 명곡이 한두편도 아니고 거의 전편이 명곡으로 탄생하였으니, 이 땅 제일의 문호(文豪)임에 틀림없다.
이은상 선생의 ‘가고파’는 작곡가 김동진 선생이 20대에 1수∼6수까지 작곡하여 확고부동한 절세의 명곡이 되었다. 김동진 선생이 70대에 들어서 ‘가고파’ 7수∼10수 까지를 작곡하여, 가고파는 마침내 2개의 가곡으로 탄생하게 됐다.
요사이 대구에서는 ‘동무생각의 청라언덕’을 동산병원에 있는 담쟁이 덩굴 언덕으로 비정하고 의미를 싣고 있다. 필자가 저자인 이은상 선생님께 직접 들은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이 더 창조적일 수도 있다.
‘동무생각(思友)’의 작사자는 이은상 선생이 분명하고, 작곡자는 대구의 박태준 선생이 틀림없으니, 동무생각이 대구와 관련이 있는 노래임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