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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국회미래硏, 국가장기발전전략 연구의 틀 제안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10.12 18:50 수정 2020.10.12 18:50

이 선 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국회미래연구원은 지난해 ‘국가장기발전전략 연구시리즈’를 통해 거버넌스, 삶의 질, 혁신성장, 노동문제를 아우르는 우리나라의 장기발전 비전과 전략을 제안하였다.
이번 연구시리즈는 우리가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구성원들의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 지향해야 할 비전이 무엇이며 비전의 실현에 필요한 구체적 전략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국가발전전략을 어떠한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지의 문제와 관련하여 본 연구시리즈는 의사결정과 정책 집행과정에서 거버넌스의 중요성, 제도의 경로의존성, 제도 부문간 상호연계성(상보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강조하였다.
특히 국가발전전략이 단순히 희망사항의 나열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장해 온 과거의 경험과 유산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확인하였다.
이는 장기비전을 제시하고자 한 그간의 국가 차원의 시도가 구체적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한 데에는 기존의 제도와 시스템으로부터 기득권(또는 지대이익 rent)을 누리는 추진주체들의 문제를 간과하였기 때문이라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국가 차원의 장기비전은 대선용 공약이나 행정부 비전 보고서(대표적으로 참여정부의 ‘비전 2030’이 있다)의 형태로 제안되곤 하였으나 대부분은 장밋빛 미래에 대한 선언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거나 지엽적 하위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데 머문 것으로 평가된다.
기존 비전보고서가 갖는 한계로는 첫째, 장기비전이 대체로 대통령 국정과제 형태나 분야별 전략과제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제안되면서 의제와 의제의 상호 연계성에 대한 고민이 충분하지 않았던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비전을 던지는 것에 치중하면서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에서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에 대한 모색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 전략을 만들고 정책을 집행하는 의사결정과정 자체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셋째, 민주화 이후 의회권력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민주화된 의사결정 과정이 정책 집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숙고 없이 집행권력만을 기축으로 국가 전략을 구성한 것 또한 기존 전략보고서의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성장모형이 구조적 한계에 부딪힌 1990년대 후반 이후 엇비슷한 장기전략 의제가 정부 출범 시기마다 되풀이하여 제출되었음에도 그 실효성이 높지 않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매우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국가 장기비전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참여정부의 ‘비전 2030’을 살펴보자. 2006년 작성된 보고서임에도 ‘비전 2030’이 제안한 경제사회적 의제들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2000년대 본격화한 구조적 문제가 현시점의 미래전략에도 적용되는 현재진행형 과제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비전 2030’은 약 15년 전에도 저출산, 잠재성장률, 불평등, 일자리 등 개별 분야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성장동력 확충’, ‘인적자원 고도화’, ‘능동적 세계화’, ‘사회복지 선진화’, ‘사회적 자본 확충’ 등을 5대 추진방향으로 설정하고, 투자 확대와 제도혁신을 포함한 50개 핵심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우려하던 문제들은 2020년 현재에 이르러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에 달하였는데, 이는 해당 비전에서 제시한 국가발전 방향성과 추진 과제들이 실질적으로 국가발전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음을 시사한다.
‘혁신성장’ 영역에 한정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비전 2030’은 한국의 국가발전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에 대한 적확한 진단 하에 경제・산업 전략의 경우 양적 투입 및 정부 주도형에서 혁신형 및 시장 주도형으로 전환할 것을 주문하였다.
동 보고서는 양적 투입 중심 성장전략의 기초가 된 기존 성장우선주의 발전 패러다임의 한계로 인해 사회 및 경제 부문 간의 불균형 성장이 발생하고 성장과 복지 간의 연결고리가 약화된 사실을 강조한다.
‘비전 2030’은 기존 발전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한다는 발상하에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고리 장착을 통한 조화로운 발전’, ‘사람에 대한 투자 확대’, 그리고 ‘경쟁에서 탈락한 주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주요 축으로 삼는 동반성장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장기적 비전에서 정부의 부처별 장기계획에 혁신성장이라는 단어의 빈도가 증가하고 부처별 예산에서 연구개발비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외견상 지표로는 한국은 성장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정책과제를 차근차근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 지출에서 연구개발비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였으나 공적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은 혁신 지향적이라기보다는 여전히 단기적이고 안전지향적 성과지표에 의존하고 있다. 혁신이 필요한 분야조차 예산을 나눠주고 관리하는 개발시대 관료적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정책의 전달자인 관료제도의 조직과 구조와 기능이 기존 패러다임을 크게 탈피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 부문이 스스로 과거와 다른 패러다임의 국가 비전과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국가의 장기발전전략 목표에 대해 관료 스스로가 개인의 이해관계를 떠나 이를 기계적이고 중립적으로 실행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기존의 미래전략이나 비전보고서, 정부 초기에 제시되는 국정과제 제안 등은 국가가 나아갈 방향성에 대한 ‘비전’의 제안으로서는 의미가 있으나 그러한 비전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전략’ 보고서로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총 5권의 연구보고서로 구성되는 ‘국가장기발전전략 연구시리즈’는 분야별 비전과 정책과 전략(개혁과제)을 결합하면서 기존 유사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우선 각 보고서는 한국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현재와 같이 정착되기까지의 발전과정을 분야별로 분석하였다.
어떠한 정치·사회·경제 집단도 강력한 물적·제도적 토대를 갖지 못했던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의 열린 공간과 달리 한국의 경제사회는 60~70년에 이르는 성장과정에서 매우 복잡한 사회경제 제도와 시스템이 뿌리내렸기 때문에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기존 제도들과 그 제도들이 작동하는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한다.
연구 분야별로, 거버넌스 연구는 정치제도, 관료제도, 재정제도를, 삶의 질 연구는 복지, 보건, 주거 부문을, 혁신성장 연구는 과학기술, 인적자원, 금융을, 노동 패러다임 연구는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을 다루면서, 각 분야와 부문별로 제도의 성립배경과 한계를 제시하였다.
연구시리즈를 관통하는 공동의 연구 틀로는 무엇보다도 의사결정 거버넌스의 중요성에 주목하였다. 전략이 작동하는 현실세계에서는 정치적 의사결정권자나 정책의 추진주체는 선의의 설계자(benevolent planner)가 아니다.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공적 영역의 주체와 조직체계에 대한 개혁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진다.
다음으로 제도의 경로의존성과 상호연계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제도가 일단 한번 생겨나서 정착하게 되면 관성이나 다른 제도와의 연계성에 의해 개별 제도에 대한 부분적 개혁이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기존 제도로부터 기득권을 취하고 있던 이익집단의 존재 또한 기존 제도에 대한 개혁이 왜 어려운지를 설명해준다. 이러한 인식 틀에 기초해서 국가장기발전전략 연구는 공동체가 지향할 장기비전의 제시와 함께 비전 달성에 요구되는 기존 제도에 대한 개혁의제를 도출하였다.
요컨대 본 연구시리즈는 의사결정과정과 정책집행 주체에 대한 문제의식, 패러다임 전환을 가로막는 제도의 경로의존성, 부문과 부문 간 개혁의제의 상호연계성에 대한 고려를 통해 장기비전에 대한 좀 더 실효성 있는 해법을 제시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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