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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점촌국교(店村國校) 2회 졸업식 오후…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09.23 18:41 수정 2020.09.23 18:47

김 시 종 시인
국제PEN 한국본부 자문위원



그 때 1954년 3월 16일…

필자는 대한민국이 건국되던해 1948년 9월 3일, 만 여섯 살에 국민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의무교육 1기생이 되었다.
그 전까지는 한 학년이 2~3개 학급이 고작이지만, 의무교육 덕분에 내가 입학하던 해는 신입생(1학년)이 5개반(학급)이나 되었다. 교실 사정이 좋지 않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했다.
우리 반의 경우는 한교실에 1학년, 3학년 2개학년이 같이 공부를 하여, 1학년이 교실 앞줄에 앉고, 3학년은 같은 교실 뒷자리에 앉아 복식학급을 운영했다. 담임교사의 경우에 한 교실에서 2개학년이 같이 수업을 해야 하니, 신경이 곱빼기로 쓰였겠지만, 아동들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학교에 갓 입학한 1학년이 수업하는데 뒤에 3학년들이 주시를 하니, 1학년들은 햇병아리로 주눅이 안들 수 없었다.
집(중신기)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거의 십리가 되고, 교실도 1학년·3학년이 같이 사용하니 콩나물교실이었다. 다행히 이듬해(1949년 가을)에 점촌국민학교가 우리마을(모전2리=중신기)에 세워져, 호서남학교에서 1학년을 마치고, 점촌국민학교에서 2학년을 시작했다. 점촌국교도 군부대에 징발되어, 병영으로 사용되고, 점촌국교 1·2·3학년 전교생들은 일제치하 금융조합에서 사용하던 창고에서 수업을 하게 되어, 교육환경이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2학년때 담임 김성태 선생님은 단기육사(短期陸士)에 합격하여, 소위로 임관(任官)되고, 국교 2학년이 헛되게 저물었다. 저는 다리를 다치는 격(格)으로 국교 3학년 때는 6·25사변(동란)이 일어나, 수업이 중지가 되고, 피난을 가게 되어, 나의 초등학교 생활은 순탄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파란만장이었다.
국교 5년 시절은 안동사범학교 본과 출신 이승희 선생님이 담임교사로 부임하여, 입학한지 5년이 되어서야, 스승다운 스승을 만나, 공부(학문)의 진수(참맛)를 맛보게 되었다. 이승희 선생님은 매일 숙제를 내셨는데, 딴 과목은 제쳐 두고, 산수만 집중으로 숙제를 내시고, 이튿날 수업하기 전에, 숙제검사를 빼먹지 않고 엄중하게 실시하여, 숙제를 안한 아동들은 종아리에 푸른 문신(文身)을 들였다. 필자(나)도 숙제를 안하고 그냥 갔다가, 호되게 회초리를 맛보게 되어, 그 다음부터는 한번도 숙제를 빼먹지 않고, 철저히 챙겼다.
그 결과 필자는 산수(수학) 과목의 영재로 우뚝 서게 됐다. 이승희 선생님은 초임교사로서 열의가 대단하셨고, 숙제를 내고 이행여부를 꼭 확인하셔서, 아동들의 나태한 버릇을 바로잡아 명교사중 명교사가 되셨다.
6학년 담임교사도 김종태 선생님으로 철두철미하셔서, 우리반 아동의 실력을 쑥쑥 뽑아 올리고, 지역의 명문학교 입학시험에서 점촌국교 6학년 1반(1반밖에 없음) 아동 42명이, 문경중에 응시하여 27명이 합격하여, 문경군에서 입학성적 1위를 기록했는데, 당시 입시경쟁율은 5:1이었다.
점촌국교는 신설학교로서, 문경중 입학성적이 1위가 된 것은, ‘영강(穎江)의 기적’이라 할 수 있고, 아동들도 선전분투했지만, 담임교사 김종태 선생님이 입시의 백전노장이요, 베테랑이셨다.
필자도 김종태 선생님의 노련한 지도 덕분에 미꾸라지가 용된 행운을 입었음에 절을 백번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신설 점촌국교의 제2회 졸업생들은 문경중학교 입학시험 합격률 1위를 수립하고, 1954년 3월 16일에 졸업식을 마치고, 오후에는 졸업생 전원(남자48명, 여자 15명 계 63명)이 모여 동창회를 조직하고, 노래 솜씨를 자랑했는데, 지금까지 66년 6개월의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내 기억에 생생한 것은, 여생도 장선옥(당시16세)이 부른 노래다.
‘사랑하는 여러 동무들, 이별하기 서러워, 졸업후에 동창회를 기다리고 있노라…’였는데, 지금 점촌국교 2회 동창생들은 졸업후 얼굴을 한번도 못본 학우들이 반도 넘는다.
지금은 동창생 절반 이상이 천국시민이 되었지만, 아직 지구를 지키는 생존한 학우들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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