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영화 아바타의 협곡으로 장가계 여행 중에 중국에는 이름도 성도 없는 무호적자가 여기저기에 뒤섞여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기가차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둘 이상이면 벌금을 내기 때문에 아들 하나 외에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중국도 이제는 경제ㆍ사회가 발전하고 인구정책이 변하여 최근 1년간 1,400만 명의 무호적자를 구제했다는 소식이다.
남의나라 일이라 생각했는데 우리나라도 민간추산 3만 명이나 무호적자가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출생신고가 없으니까 정부에서 정확한 인구통계가 어렵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6·25전쟁 이후 60년대에는 무호적자가 12만 명에 달하였으나 지금은 3만여 명이 남아 있다고 하니, 하루 빨리 온전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게 해야 한다.
무호적(가족관계미등록)자가 되는 사유는 출생 외에도 국적이 바뀌거나 6.25전시 월남이나 천재지변 시에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지금이라도 자발적으로 법적절차를 밟아 가족관계등록을 하면 되지만, 대부분은 IMF 같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신용불량·노숙자가 되었거나 범죄자, 장애자 등 고립된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들로 판단된다. 주민등록증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암흑가의 범죄자나 염전노예처럼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사회복지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막상 극빈자인 무호적자들은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가 없다. 행정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지원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이런 과정에서 차명으로 연간 7,500억원의 건강보험료가 부당수급 되고, 얼굴 없는 범죄자가 좀비인간처럼 활개를 치고 다니는 어지러운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으로 이북에서 내려와 요양원에 있던 95세 할머니가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서비스로 주민등록증을 받고 이제야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고 너무 기쁘고 고맙다는 소식과, 70년간 폐지 줍던 할머니가 생애 첫 건강보험 혜택을 받았다는 소식과, 부모를 모르고 고아로 출생하여 47년간 무호적자로 살다가 구제된 소식 등 수 많은 사연들이 가슴 아프게 한다. 특히 2014년 염전노예 사건으로 300여 명이 단속되었는데, 그 중에 27명이나 무호적자로 나타났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참담한 무호적자 외에도 호적(가족관계등록)은 되어 있지만 거주불명자(주민등록말소자)가 전국에 45만 명이나 있다고 한다. 이 중에 65세 이상 노인만 9만 명이나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거주불명자라고 한다. 지방의 인구증가 정책이 무색해지는 일이다. 이들 또한 무호적자와 다를 바 없는 경제적 어려움과 범죄자나 장애자 등으로 고립되고 영세민, 의료보험 등 복지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2008.1.1.부터 호적법이 폐지되고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무호적자’, ‘취적허가신청’ 이라는 용어도 ‘가족관계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자’(가족관계미등록자)와 ‘가족관계등록창설 허가신청’으로 바뀌었다. 그 동안 정부에서 가족관계 미등록자 조사를 해오고 있지만 조사를 해도 숨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기가 어려운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당사자가 등록을 하려고 해도 허가신청 서류가 까다롭고 인우보증서(隣友保證書)라는 인근 거주자의 보증서도 제출해야하기 때문에, 무학력자나 무연고자가 등록하기에는 매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세상에는 법이나 지식·이치만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오히려 도덕과 윤리나 상식과 지혜로 풀어나가야 되는 일들이 더 많다. 가족관계미등록자의 경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내 형제부모처럼 생각하면 오늘당장 등록을 시작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이 절박한 약자들을 역이용하여 이득을 챙기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어둠속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특히 범죄의 세계에서는 인간병기로 이용하는 최악의 수단이 되므로, 인구증가정책과 정의사회 구현을 위하여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하루빨리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