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인터넷 공간을 떠돌다 ‘꼰대의 조건’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타이틀부터 흥미로워 멈춰 섰는데 읽다보니 ‘불변한 사람들이 꽤 많겠구나’싶었다. ‘난 아니지만 누군가는 불편하겠어’라 선 긋는 것을 보며 “이런 생각도 꼰대겠군” 싶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하고 어린 사람들에게는 반말을 한다 △ 아랫사람에게는 대체로 명령문으로 말한다 △ ‘요즘 애들은’, ‘내가 너만 했을 때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 ‘원래 다 그런거야’ 식의 말을 많이 한다 등이다.
△내 의견에 반대한 후배는 왠지 기억에 남는다 △잘 나가는 후배를 보면 의식하고 단점을 찾게 된다는 내용도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윗사람한테는, 센 사람들한테는 순응한다는 예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항목은 △그냥, ‘기존의 방식을 고수한다’라는 것이었다. 가장 포괄적인 ‘꼰대의 전형’이라는 생각이다.
폴란드에서 스무 살 청춘들이 모인 정정용호를 지켜보며 그 ‘꼰대의 조건’이 겹쳐졌다. 정정용 감독과 20세 이하 선수들은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놀랍게도 결승까지 진출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들의 쾌거와 함께 여기저기서 분석 작업이 한창이다. 복합적인 이유들의 결과물이겠으나 잠시 지켜본 입장에서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앞서 소개한 ‘꼰대의 조건’과 맞물렸다. 정정용호는, 그 반대로 움직였다.
이강인은 18세다. 대부분의 구성원보다 2살이 어린 동생이다. 그런데 이 막내가 에이스이자 리더 역할을 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 것도 그였다. 다분히, 곱지 않은 시선이 날아들 조건이었다. 그러나 다른 형들은 그 ‘막내 형’을 인정하고 존중했다.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는 위계질서가 강한 편이다. 특히 운동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더 엄격하다. 그런데 달랐다.
스트라이커 오세훈은 “우리 팀에 선후배 관계는 없다. 강인이는 동생이 아니라 우승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하는 ‘동료’다. 우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감독님이나 코치님들도 똑같이 편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우리는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함께 뛰는 ‘팀’”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선을 긋지 않으니 동생도 선을 넘지 않았다.
필드에서는 메시 같던 이강인은 경기만 끝나면 형들을 졸래졸래 쫓아다니는 막내 동생이 되어 있었다. 그는 “내가 형들을 진짜로 좋아한다는 것을 형들도 알고 있다”며 해맑게 웃었다. 서로 알아서 지킬 것을 지켜주니 딱히 서열이 필요 없었고, 그래서 위도 아래도 불편하지 않았다.
한두 살 차이야 그 벽을 허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인상적인 것은 ‘어른’ 정정용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와 스무 살 선수들 사이의 공기였다. 선수들이 감독을 대하는 태도가 진심인지 의심(?)될 정도로 한결같았다.
이강인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인 것 같다. 내게는 정말 완벽한 분”이라 했고 황태현은 “솔직히, 우리 아버지 다음으로 모든 것을 존경하는 분”이라고 했다.
오세훈은 “선생님을 헹가래 쳐 드리고 싶어서 우승해야한다. 감독님이 웃는 것만 봐도 행복하다”는 말까지 했다. 정정용 감독은 어떻게 제자들을 ‘사랑의 노예’로 만들었을까.
결승전을 앞두고 정 감독은 “적어도 무조건 지시하지 않는다. 가능한 이해하게 노력한다. 이해가 밑바탕에 깔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대한다. 나도 아이들을 이해하려 한다”고 했다. 농을 섞어 “때리진 않는다. 가급적 욕도 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이어 “선수들이 지도자를 신뢰할 수 있다면, 자기가 가진 것을 운동장에서 다 쏟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스태프들을 대하는 것에서도 기존과는 차이가 느껴졌다. 한 지원스태프는 “감독님은 전술적으로도 뛰어난 분이시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상당히 조예가 깊다. 전문가인 내가 봐도 놀랄 정도”라고 인정했다.
그리고는 “그런데도 스태프들의 의견을 거의 존중해주신다.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우리’의 의견으로 결정하신다. 그래서 감사했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됐다”는 말을 했다. 리더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경청에 따른 좋은 방향으로의 결정’임을 떠올릴 때 아주 훌륭한 지도자가 아닐 수 없다.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이 끝나고 만난 선수들, 또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르샤바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던 선수들은 대부분 “아쉽다”고 했다. 준우승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진 않았으나 그게 핵심은 아니다.
골키퍼 이광연은 “우승을 놓쳤다는 결과보다 아쉬운 것은 이 경기가 이 팀에서의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팀으로는 다시 모일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서운함을 피력했다.
정정용 감독은 폴란드를 떠나며 “아침에 선수들을 볼 낯이 없더라. 우리 선수들은 더 빛날 수 있었는데 선장인 내가 방향을 잘못 잡아서 마지막에 방향이 좀 틀렸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주장 황태현은 “도대체 왜 감독님이 미안하다고 하시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건 정말 아닌 것 같다. 감독님 꼭 헹가래 쳐드리고 싶었는데,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입으로 외치는 ‘원팀’ 수준을 넘은 결속력이었다. 무리를 단단히 뭉치게 하는 배경 속에 기존의 형태와는 다른 무엇이 있었다는 생각이다. 그 이유를 ‘기존 방식과 다른’ 것에서 찾았다. 앞서 소개한 ‘꼰대의 조건’들과 부합하는 게 없다.
뭐 대수로운 일이냐 생각할 수 있겠으나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늘 그래왔던 것과의 이별. 정정용호가 세상을 뒤집을 수 있었던 힘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