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詩人)이라면 시를 잘 짓는 시전문가를 일컫는 말임에도 사람들은 곧잘 시인을 술꾼과 동일시(同一視)하고 있다. 시인이라면 술고래를 떠올리게 된 데는 이태백에게 죄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시인은 시창작만으론 그리 돈벌이가 신통하지 못하다. 그래서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막걸리라도 맹렬히 마셔 빈 배를 채우게 되어 시인이 술고래로 통하게 되었다고 상정(想定)해 본다.
“자네의 시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술 한 잔도 못하니 시가 별 볼이 없을 것 같네. 이태백도 말술을 예사로 마셨고 공초 오상순도 술, 담배가 수준급 아니던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겐 아무리 시와 술이 인과 관계가 없다고 장황히 설명해도 내 말을 귀담아 들을 리 없고 자기주장만 계속 우길 뿐이다.
한 번은 시인들의 큰 모임이 있어서 시창작과 음주와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했더니, 대부분의 시인들이 술 먹고 지은 시는 이튿날 깨고 보면 말도 되지 않아 전면개작(全面改作)하거나 아낌없이 파기한다고 했다.
시인들의 회의에서 술을 먹어야 시를 잘 짓는다는 일반인들의 생각이 편견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주호(酒豪)시인 공초 오상순은 모든 사람들이 잘 아는 대로, 술만 먹고 소일하여 시작품이 별로 없는 시 안 짓는 시인으로 유명하다. 주벽과 기행(奇行)은 술꾼의 할 일이지 시인과는 무관한 것이다.
우리나라 문인들 중에 뛰어난 문인들은 술을 입에도 안대고, 창작에 전념하여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현대시조의 제1인자 노산 이은상 선생이 그렇고 한국 시론(詩論)의 제1인자인 문덕수 선생이 그렇다.
수필문학의 대가 정재호 선생도 술은 말할 것도 없고 음료수조차 입에 대지 않는다. 요즘은 시인도 정상적인 생활인이기를 사회가 바라고 있다. 시인으로서 꼭 필요한 것은 음주보다는 오히려 여행 쪽이라 생각한다. 나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버스나 기차를 자주 탄다. 자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짧은 시간이지만 나들이를 자주 한다. 여행을 통해서 사람들의 부지런히 사는 모습, 참되게 사는 모습을 본다. 이러한 여행에서 목격한 것이 곧바로 시 창작으로 이어진다. 내 시(詩)들 가운데는 안방에서 지은 것보다 흔들리는 버스가 산실(産室)인 것이 많고 길가다 즉흥적으로 지은 것이 명시(名詩)로 평가를 받고 있다.
올 상반기에도 서울, 대구, 강릉, 안동 등지를 다녀왔다. 내 시편들 중에 ‘외팔이 춘희’, ‘도로고’, ‘낙법’, ‘고향’등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거리가 고향인 현장에서 지은 문제작이 많다.
나는 앞으로도 해가 서쪽에서 떠오르는 이변이 일어나도 술잔을 멀리하고 지금처럼 부담스럽지 않은 미니여행을 자주하여 현장감이 넘치는 시를 계속 지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