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센룽 싱가포르 총리가 미국과 중국 모두에 약소국에게 줄 세우기를 강요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리센룽 총리는 지난달 31일 아시아 지역 최대의 안보포럼인 ‘샹그릴라 대화’ 개막 연설에서 이같이 밝혔다.
최근 화웨이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은 세계에 줄서기를 강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화웨이 사용금지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미국 상무부는 곧바로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이후 미국 기업은 물론 미국의 우방을 중심으로 화웨이와 거래를 단절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중국은 이에 맞서 ‘불신(unreliable)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최근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중국 기업을 차단해 중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훼손하는 외국 기업, 단체, 개인이 불신리스트에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동참하지 말라는 으름장이다. 미중은 무역전쟁에 이어 기술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미중 기술전쟁의 와중에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의 지적대로 약소국은 편 가르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느 편에 서야 할까?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추억을 떠올리면 당연히 미국의 편에 서야 한다.
한국은 미중이 분쟁을 벌일 경우, 아직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 옳은 선택일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는 친하게 지내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하라)’의 원칙에 따르더라도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 바른 선택일 터이다.
그런데 인식의 지평을 조금 넓혀보자. 단순한 미국과 중국의 싸움이 아니라 서양을 대표하는 미국과 동양을 대표하는 중국과의 대결이라고 생각해보자.
즉 동서양의 ‘아마게돈’이라고 상정하면 선택은 힘들어진다.
화웨이 사태는 인류 역사에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화웨이 사태의 본질은 현대에 들어 처음으로 동양의 기술이 서양의 기술을 앞선 것이다. 중국은 인류역사상 최초로 화약과 종이 등을 발명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중국이 서양의 기술을 앞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양의 대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달 30일 닛케이 미래포럼에 참석, “미국이 화웨이를 공격하는 것은 화웨이가 차세대 이동통신(5G)에서 가장 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동양의 기술이 서양을 앞선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갈파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항상 기술 최강국일 수는 없다. 서방은 동양에서도 새로운 기술이 나올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시아의 기술이 서방을 앞섰다고 위협하는 것은 정당한 경쟁이 아니라 군사적 우위를 앞세운 협박이다”고 주장했다.
마하티르 총리의 지적대로 화웨이 사태의 본질은 동양의 기술이 서양을 앞섰다는 점이다. 중국이 미국의 기술 패권에 정면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아시아에서 미국의 경제패권을 위협한 나라가 있었다. 일본이었다. 80년대 일본은 미국을 추월할 기세였다. 그러나 안보를 미국에 저당 잡힌 일본은 미국의 경제를 추월할 수 없었다.
일본은 이뿐 아니라 동양의 이익도 대변하지 못했다. 오히려 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이번 화웨이 사태에서도 일본 기업들은 앞장서 화웨이와 관계를 끊는 등 미국을 일방적으로 추종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앞잡이’인 것이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과거를 완벽하게 청산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아시아의 이익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일본과 중국이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중국은 미국의 핵우산 밖에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 안에 있다. 따라서 제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핵우산 밖에 있다. 그런 중국은 제목소리를 낼 수 있고, 자국의 이익은 물론 아시아의 이익을 관철하는 데 앞장설 가능성이 크다.
화웨이를 둘러싼 갈등이 미중이 아니라 동서양의 대결이라면 우리는 과연 어디를 선택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