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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내가 남느냐 돈이 남느냐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5.26 18:31 수정 2019.05.26 18:31

김 경 록 소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 문제로 고뇌합니다. 노후를 맞이하는 우리도 ‘돈이 남느냐 내가 남느냐’를 고민합니다. 내가 죽고 나서 돈이 남아 있으면 살아 있을 때 충분히 쓰지 못한 셈이 되니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반대로 내가 살아 있는데 돈이 먼저 소진되면 노후파산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도 저도 아닌 제3의 길, 돈의 수명과 나의 수명을 일치시키는 게 최선입니다. 수명이 들쭉날쭉 불확실하니 이 둘을 맞추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돈의 수명과 나의 수명을 일치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은 물가에 연동되는 종신연금입니다. 매년 물가 상승만큼 증가하는 연금을 죽을 때까지 수령하므로 두 수명이 정확히 일치됩니다. 공무원연금,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이 이 조건을 충족합니다. 연금액이 많은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을 부부가 수령하는 경우에는 돈이 남을지 내가 남을지를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은 공적연금만으로 노후 지출을 충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냥 천수답처럼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를 보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국민연금을 수령하지 못하는 배우자가 임의가입이나 추후납입을 통해 부부 모두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방법입니다. 임의가입은 국민연금 의무가입 대상자가 아닌 배우자가 국민연금에 가입하여 노령연금을 받는 제도입니다. 월 30만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물가에 연동되기 때문에 20년 후면 44만 6,000원(물가 매년 2% 상승 가정)을 받게 됩니다.
노후에는 월 40만원도 큰돈입니다. 추후납입은 경력 단절로 국민연금을 납입하지 못한 사람이 그 공백기간의 보험료를 추후에 납부하여 납입기간을 길게 하는 제도입니다. 이를 통해 부부가 국민연금을 함께 수령하는 연금 맞벌이를 한다면 종신연금 수령액을 늘릴 수 있습니다.
둘째, 국민연금 수령시기를 연기함으로써 수령액을 늘릴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수령 시기를 1년 미룰 때마다 7.2%씩 연금액수가 많아지니 최대 5년을 미루면 36%를 더 받습니다. 60세부터 국민연금 월 1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수급 시기를 65세로 5년 늦추었다면 월 165만원을 받게 됩니다.(매년 연금가입자들의 임금상승률 4%, 물가상승률 2% 가정)
반면, 60세부터 받은 사람은 65세에 110만원 받습니다. 그리고, 80세가 되면 연기수령한 사람은 222만원을 받는데 60세에 수령한 사람은 148만원을 받습니다. 오래 살수록 이 차이는 커집니다. 일찍 사망하면 손해보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수령시기를 60세에서 65세로 연기한 경우 대략 75세 이상 살면 이득이 되니 그렇게 불리하지는 않습니다.
셋째, 이것도 부족하면 민간 보험사가 제공하는 종신연금을 삽니다. 다만 보험료가 비싸서 수령액이 많지 않은 단점이 있습니다. 즉시연금 1억원에 가입하여 60세부터 종신연금을 수령할 경우 월 38만원 정도 받을 따름입니다. 게다가 공적연금처럼 물가에 연동되어 매년 지급액이 증가하지 않고 액수가 거의 고정되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구매력은 떨어지게 되겠죠. 종신연금도 수령시기를 늦추면 받는 금액은 많아집니다. 60세 가입하여 80세에 종신연금을 받으면 월 수령액이 97만원으로 많아집니다. 그래서, 60세에 3억원이 있으면 1억원은 80세부터 받는 종신연금에 가입하고 나머지 2억원은 잘 운용하면서 지금부터의 지출에 충당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택연금을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주택연금은 주택을 맡기고 주택금융공사로부터 연금을 종신토록 받는 제도인데, 연금수령 연령에 따라 연금액이 달라집니다. 만일 3억원 주택을 가진 사람이 60세에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월 60만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70세에 가입하면 90만원으로 많아지며, 80세에 가입하면 연금액이 월 145만으로 껑충 뜁니다. 70세 수령은 60세에 비해 월 30만원이 많은 반면에 80세는 60세에 비해 월 85만원이나 많아집니다. 60세에 주택연금을 받아서 100세까지 살면 총 2억 9,000만원을 받고 80세에 받아서 100세까지 살면 3억 5,000만원을 받게 됩니다. 
친구 5명이 80세에 모여서 6,000만원을 내고 게임을 합니다. 3억원의 기금이 조성되는데 이를 정기예금에 넣어두고 매년 잔액의 10%를 각각에게 나누어 줍니다. 만일 한 사람이 사망하면 총 지급금의 1/5을 갖게 되고 두 명이 사망하면 1/4을 갖게 되겠죠. 금리는 편의상 ‘0’으로 가정하겠습니다. 첫 해에 아무도 안 죽으면 3억원의 10%인 3,000만원을 6명이 나눠 갖습니다. 한 명당 500만원입니다. 둘째 해에 한 명이 사망하면 2억7,000만원의 10%인 2,700만원이 지급되는데 이를 5로 나누면 각각 540만원 갖습니다. 사망한 사람의 몫을 나머지가 가져간 거죠. 만일 60세에 이 게임을 시작했다면 초기에는 사망자가 거의 없으니 각자에게 배분되는 몫에 큰 변화가 없지만 80세를 넘어가면 받는 금액이 많아지게 됩니다.
이를 톤틴(tontine)이라고 합니다. 톤틴은 연금(annuity)과 제비뽑기(lottery)를 합친 구조입니다. 17세기에 고안되어 18~19세기에 성행했지만 상대방의 죽음을 기뻐해야 하는 구조라서 요즘은 원래 구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장수시대를 맞이해서 톤틴이 필요하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톤틴은 거의 없어졌지만 현재의 종신연금은 기본적으로 톤틴의 구조를 깔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 들어 수령할 때 그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론 빨리 사망할 때는 손실도 큽니다만 돈의 손실은 사망과 함께 나타나므로 상속액은 줄지라도 본인에게 직접적인 타격은 없습니다.
공적연금 수령액이 적은 우리나라는 종신연금으로 노후지출을 모두 충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내버려둘게 아니라, 오래 살지도 모르는 장수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차선책을 가져야 합니다. 최소한의 생활비는 나의 수명과 일치시키는 거죠. 큰 무리 없이도 현재의 연금제도를 잘 활용하면 됩니다.
국민연금의 연기수령, 임의가입, 추후납입 제도를 활용하고 즉시연금이나 주택연금의 수령시기를 적절하게 늦추면 수명이 아무리 길어져도 연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남느냐 돈이 남느냐의 고민에 대한 해결책은 우선 기존의 연금제도를 잘 활용하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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