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바꾸거나 렌트를 할 때마다 운전자의 환경이 급속히 디지털화 하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 플랫폼 기업이라고 부르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의 세상인데(뉴욕대 갤러웨이 교수가 말하는 이른바 ‘4대 천왕’) 이들 중 애플, 구글, 그리고 테슬라는 그 영혼이 기계적이라는 자동차에 진출해서 자동차의 정체성을 디지털로 바꾸고 있다. 자동차는 운송수단에서 IT플랫폼으로 변모하고 있고 기존 자동차 회사들은 그 조류에 적응하느라 분주하다.
애플은 사상 최초로 시가총액 1,000조 원을 넘은 회사다. 우리가 매일 300만 원을 쓴다고 할 때 고려 태조 왕건 때부터 오늘까지 써야 1조 원이 된다고 하는데 그 1,000배다. 이런 파워를 가진 기업은 사업 다각화를 하려고 마음먹으면 한계가 없다. 애플이 본격적으로 진출할까 봐 가장 전전긍긍하는 산업은 미디어산업이지만 전기차 프로젝트 ‘타이탄’이 보여주는 것처럼 애플은 자동차산업도 긴장시킨다. 타이탄은 스위스 시계를 꺾은 애플워치 개발자 밥 맨스필드가 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자동차 관련 M&A도 종래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2017년 취리히재보험의 브라이트박스 인수처럼 M&A의 주체가 의외의 산업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브라이트박스는 스마트폰 앱으로 운전자와 자동차, 자동차와 제조사, 판매점을 연계시키는 기술을 개발하는 AI회사다. 향후 어떤 분야에서이든 AI 데이터처리기술을 가진 기업들은 자동차산업의 진화 과정에서 기술을 현금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들 한다. 삼성전자가 자동차 전장의 강자 하만을 인수한 것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2017년 자동차산업 내 기술기업 M&A는 파워트레인 부문(32%) 다음으로 자율주행(28%), 커넥티드카의 핵심인 연결기술(16%) 부문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기술컨설팅회사 햄플튼의 보고에 따르면 독일의 타이어제조사 콘티넨탈이 이스라엘의 아거스(Argus)를 4억3,000만 달러에 인수했고 아일랜드의 앱티브(구 델피)가 싱가포르의 무인자동차 소프트웨어사 누토노미(nuTonomy)를 4억 달러에 인수했다. 아거스는 다이믈러, 피아트, GM 출신들이 창업한 회사이고 누토노미는 MIT에서 창업된 회사다.
이 분야 M&A도 점차 대형화 추세다. 2017년에 인텔이 153억 달러에 이스라엘의 모빌아이(MobilEye)를 인수했고 포드는 10억 달러를 아르고AI(Argo AI)에 투자했다. 전자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M&A다.
이스라엘은 미래 자동차기술과 M&A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다이믈러, 폭스바겐 자회사 스코다와 세아트가 이스라엘에 새로 R&D센터를 열었다. 이스라엘은 2017년에 아거스, 모빌아이를 포함 모두 3개의 자율주행기술기업을 해외에 매각해 이 분야 최대의 M&A 매물 공급국으로 등장했다. M&A 건수에서는 중국과 미국이 각각 694, 690건으로 선두다. 개별 회사로는 다이믈러가 8건으로 르노와 폭스바겐의 각각 7, 5건에 앞섰다. 현대차와 도요타는 각 3건이다.
일본도 물론 가만히 있지 않는다. 도요타의 자회사인 덴소가 AI 투자에 가장 적극적이고 알리바바의 30% 대주주인 소프트뱅크는 우버에 93억 달러, 비주얼컴퓨팅회사 엔비디아(Nvidia)에 50억 달러를 투입했다. 중국의 검색엔진 바이두와 함께 자율주행차회사 SB Drive도 만들었다. 바이두는 상하이를 포함한 중국의 몇몇 대도시에서 자율주행버스 서비스를 개시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회계법인 언스트&영은 자동차산업의 움직임을 ‘자동에서 자율로’(from automobile to autonomous)라고 규정한다. 이 진화 과정에 적응하기 위해 기존 자동차회사들은 디지털 기술의 확보로 고객층 방어에 부심하고 있고 플랫폼회사들은 고유의 기술로 자동차산업을 넘보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M&A가 가장 각광받는 공격과 방어전략이 되는 이유다.
자동차만큼 현대사회의 틀을 규정짓는 제품이 없다. 오늘날 대도시와 인프라의 형태, 시민들의 생활양식은 상당 부분 자동차가 만든 것이다. 부작용도 같다. 그래서 고도의 규제대상이다. 안전, 대기오염 축소, 자원 절약 같은 가치가 규제에 스며있고 그는 다시 자동차 형태와 기능, 가격을 결정했다. 이제 그 모든 것이 바뀌는 중이다. 소유의식도 함께 변한다.
필자가 1학년 때 서울대 교정에는 승용차가 딱 한 대 있었다. 총장 차. 어느날 학생이 차를 몰고 학교에 온다는 소문이 돌았고 모두들 보러 갔다. 현대 ‘포니’ 한 대가 약대 건물 옆에 찬란하게 서 있었다. 포니는 1976년에 나온 최초의 고유모델이다. 30년 후에는 지도없이 차를 타고 가면서 국제전화도 하고 TV뉴스도 보게 될 줄 몰랐다. 이제 교내 전체가 자동차로 가득하고 한국은 글로벌 5위 자동차 회사를 보유한 나라가 되어있다.
자동차의 전통적 정체성 기준으로는 한국이 더 위로 올라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플랫폼이라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5G 테이프를 끊은 나라다. 어차피 공룡들 사이에 끼인 한국의 활로는 지식과 기술에 기반한 국제화와 디지털화뿐이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분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