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못 짓는 시인’, ‘노래 못하는 가수’는 한마디로 무용지물이다. 일제 치하에선 ‘시 못 짓는 시인’이 9할은 된 것 같다.
그들이 끼친 작품은 꿈속에서도 볼 수 없고, 형이하학적 기행(奇行)이나 폭음 주사(주벽)들이 얼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후인들이 인심이 후하여 ‘시 못 쓰는 시인’ 이름으로 문학상을 시상하고 있는데, 수상자인 후배시인들은 시작(詩作)을 게을리 하지 않아 선배시인들의 허물을 묻어주고 있다. 문학은 학문이 아니라 창작이기 때문에 필자는 ‘문학’으로 표기하지 않고, 즐겨 ‘문예’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문과 교수를 문학가와 동일시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문학 강의를 맡은 교수도 별 깨달음이 없이 교재에서 배운 대로 현실감각이 부족한 피상적인 평소 상식을, 자기가 깨달음을 얻은 양 아무 생각 없이 써먹고 있다.
우리나라 문예 분야 중 수필같이 엉성하게 조명된 분야도 없는 것 같다. 일반 교수를 한국의 수필대가로 흔히 꼽는 너 댓 사람은 필자가 인정할 수 없는 저력이 모자라는 화상들이 대부분이다.
영문학을 대학에서 전공하고 빵 꽤나 뀌는 외국 에세이를 흉내 낸다고 일류 수필가가 되는 게 아니다. 감동적인 수필가가 갖추어야 할 요소는 위트와 정서, 예술성이 꼭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평론가 중에서 가장 센스가 있었던 분은 현대문학 종신 주간을 한 조연현 교수님이다. 이상(1910-1937)을 시 ‘오감도’(1934년 작)와 소설 ‘날개’로 묶어 시인·소설가로 난해하게 조명하지만, 이상의 수필은 단연 현대문단의 백미다. ‘성천기행’과 ‘권태’에서 보여주는 날카로운 감각과 참신성은 한여름 폭염아래서도 시원하기만 하다. 이 땅의 참된 수필문학의 진수를 맛보고 싶으면 수필집 ‘권태’를 꼭 일독(一讀)하여 참된 수필과 만나시기를 간곡히 권고한다.
이은상(1903-1982)은 이 땅의 대표적 천재시조시인이지만, 수필가로서도 단연 독불장군이다. 일제 때 동생 이정상(배재고 재학생)이 항일독립운동을 하다가 용산 경찰서에 잡혀 고문을 당해 순국했다. 아우를 고문으로 잃게 된 아픈 형의 마음을 하룻밤 동안 기록한 일기(日記)가 이은상의 통한의 쾌저 ‘무상(無常)’이다. 일제치하 이 땅의 우국지사들이 필독한 전대미문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한 것이다. 오늘을 보람 있게 살고자 하는 분들에게 ‘무상’을 꼭 읽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시기를 권고한다.
의사며 수필가인 박문하(1918-1975)는 재밌게 수필을 쓸 줄 아는 멋쟁이 의사 수필가다. 독립운동 가문의 막내로 부산 밤거리에서 찹쌀떡을 팔던 소년가장 박문하는 조선의사 검정고시를 통과한 천재다. 몇 권의 수필집이 다 명작이 아닌 것이 없지만, 그의 ‘잃어버린 동화’를 읽으면, 칠십노옹의 뺨에도 느닷없이 뜨거운 것이 흐른다. 한국현대수필계의 제1인자로 박문하 선생을 자신 있게 천거한다. 좋은 수필가가 되고자 하는 분은 박문하 선생의 수필집 몇 권을 통효하면 보약이 될 것이다.
네 번째로 천상병시인의 영부인 목순옥(1935-2010) 여사를 옹골찬 수필가로 천거한다. 상주여고 출신이자 천상병 시인의 수호천사였던 목순옥의 수필집 ‘날개 잃은 새의 짝이 되어’는 내용도 감동적이지만 문장력과 미학도 특출하여 천상병 시인의 시심에 맑은 샘물이 되었다. 목순옥의 ‘날개 잃은 새의 짝이 되어’를 놓치지 않고 읽게 된 것도 신의 은총이 아닐 수 없다.
현존하는 수필가 중엔 여류 서경희 작가를 주목한다. 빼어난 두 권의 수필집을 낸 서경희 작가는 한국문인협회 문예대학의 수필교수로, 명강의를 속출하여 수강생들이 뿅 가고 있을뿐더러, 수강생들의 차후 창작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경희 작가는 정문문학상과 이은상문학상을 진작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수필계의 5걸을 필자가 문학생명을 걸고 선언한다. 좋은 수필가 이상, 이은상, 박문하, 목순옥, 서경희씨를 잠간 살펴본 것은 이 땅의 수필문학과 국민들을 아끼는 충정에서 필자의 본심을 서슴없이 만천하에 용기 있게 공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