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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여운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3.05 19:29 수정 2019.03.05 19:29

김 수 종
뉴스1 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평양에서 철도와 자동차로 사흘간 4500㎞를 달려 베트남 하노이까지 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1만3000㎞의 하늘 길을 날아 하노이로 갔다. 2월 27일 만찬을 함께할 때까지만 해도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합의가 어떤 형태로든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이튿날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은 실패로 끝났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허탕치고 귀국했다. 미국이 제시한 핵프로그램 폐기 요구와 북한이 요구한 제재 철회가 맞아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트럼프는 톱다운 방식의 정상외교에 대한 국내 비판여론에 직면했고, 김정은 역시 빈손 귀국으로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다. 북·미 협상에서 정국의 돌파구를 찾고 있던 문재인 정부는 당분간 혼돈과 고민에 빠질 것이다.
정상회담의 결렬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주목된다.
김정은이 어떤 행동으로 나올지에 관심이 쏠려 있다. 트럼프의 교묘한 협상 스타일에 휘둘렸다고 생각한 김정은이 화풀이로 핵무기나 미사일(ICBM) 실험으로 도전하고, 트럼프가 ‘분노와 화염’(fury and fire)으로 받아치는 2017년의 공방이 되풀이될 것인가.
당분간 그런 대결의 길로 갈 것 같지는 않다. 북한도 미국도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자제하며 협상 재개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합의 거부로 회담이 실패했으니 김정은의 심기가 좋지 않을 것은 뻔했다. 그러나 회담이 결렬된 이튿날 북한의 관영중앙통신은 “최고 영도자 동지가 트럼프 대통령이 먼 길을 오고 가며 이번 상봉과 회담의 성과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데 대해 사의를 표시하고 새로운 상봉을 약속하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고 보도했다.
북한 관영미디어가 이렇게 트럼프를 배려하는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김정은이 감정을 배제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상황을 관리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트럼프가 28일 낮 회담결렬 후 기자회견을 통해 그 결렬 원인이 북한의 전면적 제재해제 요구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북한은 그날 밤 늦게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이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측 주장을 반박하면서도 강경한 표현을 쓰지 않았다.     
미국도 북한과 재협상 여지를 남겨놓았다.
트럼프는 귀국길 비행기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대화를 통해 중재자 역할을 해줄 것을 부탁했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앞으로 다시 만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카리졸브 연습’과 ‘독수리훈련’을 한미합의로 신속히 영구 종료한 것도 협상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배려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차 회담 이후 표출해온 김정은에 대한 신뢰의 언어를 버리지 않았다. 북한과의 대화를 이어나가겠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고문으로 죽은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과 관련하여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물어보았더니 그가 모른다고 하더라며 김정은을 믿는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이런 발언은 미국 여론의 비난 대상이 되고 있지만, 협상 상대로서 김정은의 존재감을 고려하는 트럼프의 제스처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장기적으로 볼 때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은 북한 비핵화의 큰 분수령이며, 이번 결렬이 비핵화 협상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협상은 깨졌지만 이 참에 북한과 미국 간의 의견 차이가 무엇인지가 보다 더 확연해졌기 때문이다.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영변핵시설의 완전한 폐기를 제시하며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했고, 미국은 영변 이외의 우라늄농축 시설의 증거를 들이대며 제재해제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특히 새로 제기된 우라늄농축시설은 미국 정보기관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공개하지 않다가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입증자료와 함께 들이대며 김정은 위원장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영변+알파의 실체인 것 같다.
평안남도 강선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새로운 핵시설은 트럼프의 회담결렬 카드로 활용된 듯하며, 장차 북한 비핵화 의지의 시험대가 될 것 같다. 이런 의견의 간극이 크고 정상회담 실패에도 북한과 미국이 상대를 배려하며 재협상의 여지를 남기고 있는 이유는, 톱다운 방식의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과 트럼프는 그들의 정치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의 경제발전을 열망하고 있는 김정은으로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유엔 안보리의 경제제재를 풀어 남북경제교류와 국제 투자를 유치하고픈 절박한 위치에 있다. 트럼프로서는 25년간 3명의 전직대통령이 풀지 못한 북한비핵화를 해결하여 노벨평화상과 내년 대통령 재선의 꿈을 안고 싶어 한다.
북한 비핵화는 “가능하나 불가능하나”라는 이분법의 정태적 관점이 아니라 시대 상황과 당사자들의 노력에 의해 달성 가능한 동태적 현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하노이정상회담은 실패했지만 핵무기 없이 국가안보와 경제도약을 이루어가는 베트남의 교훈은 북한과 미국에게 좋은 시사점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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