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시인인 나는 우리 현대사(現代史)를 즐겨 시(詩)로 지었다.
유신통치가 극성을 부리던 1977년! 국내에 사는 우리는 우리나라 사정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언론의 통제가 도를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의 그물 때문에, 야당 총재 김영삼의원의 유신헌법철폐 무기한 단식 투쟁도 국내신문에는 ‘정치현안 문제’라고 막연히 표현하여 국민들은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모호함 속에서 눈 뜬 소경으로 살아야 했고 긴급조치발동으로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하지만 시인인 나는 시를 통하여 은유를 통하여 답답한 현실을 고발하여 정신적으로 자유를 누리고 살았다.
유신통치가 독하다 해도 시의 은유까지는 억압을 할 수 없었다. 직설적으로 유신통치에 직격탄을 날린 사람들은 국립호텔에 정중히(?) 수용되었지만 은유?풍유 등 비유를 애용한 시인들은 창살 밖에서 살 수 있었다.
필자의 저항시 ‘마법(魔法)의 방(房)’은 1977년 현대문학 5월호에 발표되어 필자뿐 아니라 민초들도 당시 답답한 국내의 유신체제 아래서 시 ‘마법의 방’을 읽으면서 답답함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었다.
시의 참된 소명은 시를 통해서 가슴을 억누르는 부담스러운 현실을 견뎌내는 원동력이 되고 자유가 회복되는 멀지 않은 장래에 대한 소망을 잉태 할 수 있는 것이다.
시 ‘마법의 방’으로 들어가 볼까요.
(시) 마법(魔法)의 방(房) / 김시종
우리가 사는 집은
마법의 집이다.
문을 열고 방에 들어왔지만
방안에선 창밖으로 나갈 수 없다.
사방이 창으로 둘린 방이지만
사면이 단단한 석벽뿐이다.
밖에선 안의 우리를 볼 수 있지만
우리는 밖의 누구도 볼 수 없다.
드는 길은 있어도 출구라곤 막힌
우리 방(房)의 절대적 구조
‘열려라 참깨!’
아리바바의 동굴도 활짝 열리는데
열심히 주문(呪文)을 뇌어도
마법의 방문은 끄떡 않는다.
(현대문학 1977년 5월호)
<덧말> ‘현대문학’에 실린 ‘마법의 방’시 원고료를 받아 그해(1977년) 처음 완간된 공동번역 성경전서를 구입하여, 공동번역 성경전서를 애독하면서, 유신의 긴 터널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