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2019년)를 맞아 필자는 78세의 촌로(村老)가 되었다. 올해는 기해년(己亥年)으로 황금돼지의 해라고 하여, 국민 제현(諸賢)께서는 부자 되는 꿈에 가슴이 설레는 것 같다. 이 땅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돼지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못 말리게 많은 것 같아 딱하다.
흔히 돼지라면 동작이 둔하고, 불결한 것을 좋아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돼지는 대갈통(머리통)이 큰 탓인지 몰라도 머리가 좋다.
돼지는 더러운 것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먹이로 쉰밥과 불결한 구정물을 식사로 주고도 자선을 베푼 것처럼 사람들은 어처구니없이 군다.
돼지같이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가축은 없다.
이 점을 바로 알고 황금돼지해를 맞이하여, 돈공(豚公)들에게 깨끗한 음식을 주고 물도 1급수로 주어 사람들에게 육질이 좋은 살코기를 서비스 하도록 해야 한다.
원시인들이 문명의 문빗장을 열게 된 것은, 멧돼지를 길들여 집돼지로 귀화(?)시키고 집돼지를 사육하여 두뇌에 필요한 단백질을 차질 없이 공급하게 되어 인류문화 발달이 놀라 자빠지게(?) 발전하게 된 것이다.
필자의 초?중?고 시절(1948년~1960년)엔 한해에 두 번(설?추석)만 돼지고기를 먹어도 그 해는 운수대통한 해라해도 허풍이 아니고 너무 정직한 고백이라 할 수 있다.
못 사는 사람은 설과 추석에도 네발 달린 짐승의 고기를 먹을 길이 없이 못내 서운했다.
지금은 돼지고기?소고기를 옛날 못 사는 집에서 시래기 먹듯이 자주 먹는 좋은 세상,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지만 사람들 맴(마음)은 옛날 못살던 시절보다 더 쪼단해진 것 같아 안쓰럽다.
2000년은 19년 전의 제법 시간이 흐른 지난날이다.
그 때 필자는 문경읍에 있는 문경서중학교 교장실 지킴이로 근무했는데, 아침 출근길에 트럭에 실려 도살장으로 가는 돼지떼를 보니 죽음으로 돌진하면서 두려움도 없이 의젓하여, 노시심(老詩心)이 발동하여 ‘행군(行軍)의 아침’이란 시(詩)한편을 뚝딱 지었다.
죽음이란 사람뿐 아니라 짐승(돼지)에게도 마지막 가는 길이라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죽음으로 돌진하는 돼지떼를 위하여 시 한편을 지은 것도 되지만 안쓰러운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지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필자 칼럼의 애독자들과 ‘행군의 아침’으로 같이 가 볼까나.
(시) 행군(行軍)의 아침 / 김시종
돈공(豚公)들이 트럭을 대절하여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일사각오(一死覺悟)하고,
마지막 전선으로 떠나는구나.
돈공(豚公)들이여, 그대들은 의연하구나.
적의 도끼날도 겁내지 않고
당당히 행진하는구나.
그대들 있음에
우리나라는 국태민안(國泰民安)하구나.
그대들의 영원한 안식처는,
국립현충원이 아닌,
겨레의 가슴에 있구나.
(2000. 7. 10)
(덧말) 황금돼지해를 맞이하여, 돼지에 대한 비상식적인 편견을 완전 청소하고, 슬기롭고 건강한 2019년이 되시기를 비노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