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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사촌(四寸)이 땅을 사면…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12.19 20:04 수정 2018.12.19 20:04

김시종 시인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장미꽃 가시에 찔려 보고 나서야, 백합이 부드럽고 우아한 꽃임을 알게 된다. 유수한 여객회사의 버스기사인 조학사(법학사)는 키도 크고, 성격도 쾌활하고, 매너도 좋고 어디를 봐도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신사인데, 동료운전 기사들은 조학사를 자기들끼리 얘기할 때, 껌도 아닌데 자주 씹는 모양이다.
내가 보기엔 조학사는 지적수준이 동료버스기사와는 비교도 안된다. 방송대학 법학과를 시간여유가 없어 정기시험기일에 응시하는데도 만난을 극복해야 했다. 법학이 만만한 학문이 아님은 법학을 공부한 사람만이 제대로 알 수 있다. 조학사가 방송대학 법학과를 제 때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명석한 두뇌와 면학정신을 겸비했기 때문이다. 시간여유가 없는 버스기사로 정시 졸업한 사실은 평범한 일이 아니고 확실히 쾌거에 속한다. 조학사는 법학사 자격만 갖춘게 아니라, 한문교양시험에도 최고과정인 사범(지도교사)자격증도 당당히 따냈다. 조학사가 동료기사들로부터 시기·질투를 당하는 것은 우리사회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지사라고 보는게 정확한 이땅 현실의 파악이다.
이웃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이 이땅 민초들의 실토요, 엄연한 현실이다. 서글픈 현실이다. 우리집 황소가 도둑맞았다는 아픔보다, 이웃집 암소가 죽은 송아지를 낳았다는 소식이 더 기쁘단다. 내가 못되는 것은 괜찮지만, 남 잘 되는 것은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말이 유행되고 있다. 나도 잘 돼야 하겠지만 이웃사촌(남)도 잘 돼야 한다. 이웃집이 끼니를 이을 양식이 없어 여러 날 굶는다면 나에겐 아무 피해가 없을까?
사흘 굶고 담 안 넘을(도둑질) 화상이 없다는 속담이 있다. 사흘 굶어 기운이 없어 멀리 갈 수 없으니,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식칼을 들고, 담을 넘어 이웃집 안방에 침범하여, 식구들을 해치고, 보물(盜物)을 챙길 것이다. 이웃집이 어려움을 당해도 못 본체 하면 해코지를 당하는 것은 따 논 당상(堂上)격이니,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을 위하고 자기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길일까. 나도 잘 되고 남도 잘 되도록 부추겨주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 나를 위로·격려해준 고마운 사람을 나는 평생 두고 잊지 못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플 게 아니라 나도 포근함을 느껴야 한다. 사촌이 못 살아서 자주 찾아와 상습적으로 손을 벌리면 한두 번도 아니고 넉넉히 살지도 못하는 처지에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잘 살아야하지만 사촌이 나보다 더 잘 살아야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사촌이 있는 돈을 몽땅 투자하여 땅을 마련 하느랴고 등기할 돈도 모자랄 테니, 사촌에게 등기비라도 넉넉하게 대주고, 그간 땅 마련하느랴 고생이 많았다고 등이라도 투닥여 주는 인정 있는 사람(친척)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새로 산 땅에서 첫 추수를 하게 되면 사촌은 1착으로 햅쌀1가마니를 등기비를 대준 다정한 친척에게 손수 날라줄 것이다. 돌을 던지면 바위가 날아오고 찰떡을 던지면 꿀떡이 굴러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몇 일전 지역문예지가 내게 배달되었는데, 자유시 3편이 발표되고 김시종 약력에 1942년 문경출생·1967년 시조 ‘도약’으로 중앙일보신춘문예당선등단으로 약력이 단 2줄이다. 이런 약력은 너무 야박한 약력이다. 52년 전 중앙일보 신춘문예시조 당선으로 전혀 활동이 없고, 당선으로 문학인생이 끝난 걸로 독자들이 착각하기 십상이다.
필자는 1967년에 시조(중앙일보신춘문예당선)로 등단했지만, 1969년 월간문학 11월호에 자유시 ‘타령조’로 자유시인이 됐고, 1969년 현대문학 4월호에 수필 ‘메리의 죽음’을 발표하여 수필가로 등단하여, 운문(시) 산문(수필)을 섭렵한 완벽한 문예인이 되었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편찬한 ‘한국의 현대시’(세계최초전자시집)(316人選集)남·북 시인)에 선정되어 나의 시 20편이 실렸는데, 316인 선정엔 경북생존시인으로 유일하게 필자(김시종)가 선정됐다. 한국현대명시집(시인 120명 수록)에도 경북에선 유일하게 내가 뽑혀 실렸다. 경북도문화상(문학부문)도 1983년에 수상했는데, 문학부문 최연소 수상자였고, 1991년엔 서울신문 향토문화대상(현대문화 본상)을 수상하여, 전국적으로도 날리는(?)시인이 됐지만, 필자는 겸손을 미덕으로 알고 조용히 살고 있다.            
(2018. 12. 16. 19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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