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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제주 ‘하논 분화구’ 복원해보자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11.22 18:30 수정 2018.11.22 18:30

김 수 종
뉴스1 고문

공항철도의 김포공항역에서 특이한 광고판 하나를 보았다. 바닷가에 인접한 산자락에 파란 호수의 이미지가 새겨 있고, 그 위에 '하논 분화구 복원은 시대의 사명입니다'는 광고 문구가 적혀있다. 유명 관광지나 지방 특산물 광고가 제격인 공항 지하철역 로비에 느닷없이 나온 '하논 분화구 복원' 캠페인 광고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할 듯싶다.
하논 분화구는 제주도 서귀포 천지연 폭포 바로 상류에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화산 분화구다. 이 분화구를 복원하자니, 그게 무슨 뜻이고, 어떤 가치와 사연이 있을까.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지난해 4월 18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제주를 찾아 공약을 발표했다. 제주 4·3문제와 주민의 삶에 중점을 둔 공약이 주된 내용이었지만, 제주도 자연보전과 관련한 색다른 공약이 하나 있었다.
"제주의 자연은 세계가 인정한 대한민국의 보물입니다… 하논 분화구의 복원을 추진하겠습니다. 환경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세계자연보전총회도 권고했습니다. 하논 분화구 복원은 새 정부의 환경의지를 국제사회에 알리게 될 것입니다."
당시 문재인 후보가 하논 분화구를 깊게 알았을 것 같지는 않다. 하논 복원 이슈가 전문가 및 지식인 사회의 큰 관심을 끄는 것을 보고 선거 참모들이 공약으로 발표하도록 조언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후보가 공약했고 그가 대통령이 됐으니, '하논 복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된 셈이다.
50년 전만 해도 대부분 서귀포 사람들은 이곳이 화산 때문에 생성된 분화구인 줄을 몰랐다. 지표수가 귀한 제주도에서 흔치 않게 용천수가 쏟아지는 하논은 벼를 경작할 수 있는 넓은 논이었고, 이 분화구를 둘러싼 완만한 화구벽은 주로 감귤 과수원이었다. 가을이 되어 밀감과 벼가 노랗게 익었을 때, 이곳은 그야말로 풍요의 땅이었다. 당시 서귀포 도심에서 떨어진 하논은 논과 과수원을 제외하면 자연 그대로의 원형을 간직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하논은 약 5만 년 전 뜨거운 마그마(지하용암)가 그 위의 지하수와 반응하면서 생긴 전형적인 마르형(MAAR)형 분화구다. 마르형 분화구는 넓고 얕으며, 깊지 않는 호수가 생기는 게 특징이다. 하논은 제주에 산재한 360여개의 오름 중 하나로 분류되는데, 분화구 둘레가 약 3700m, 넓이가 127만㎡로 백록담보다 훨씬 넓다. 분화구 안에 작은 오름이 솟아 있는 2중분화구 형태도 특이하다.
'하논'이란 지명은 '큰 논'이란 뜻이다. 하논은 원래 얕은 호수 또는 습지였는데 옛 사람들이 호수의 물을 빼내고 논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논은 1485년(성종 10년)에 발간된 <신동국여지승람>에는 "봉우리(삼매봉) 안에 텅 비고 넓은 논이 있으며 그 크기가 수십 경(1경은 약 3000 평)에 이르며 '대못(大池)'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또 1653년 간행된 <탐라지>에는 "'조연(藻淵)'이라고 부르며 개구리밥과 게가 많다. 동쪽을 뚫어서 물을 빼고 논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었다. 지금도 하논에는 지하수가 용출하며 천지연 폭포로 흘러간다.
21세기 들어 제주 관광이 활성화되고 서귀포시가 확대되면서 하논은 자주 개발 대상지로 거론됐다. 그중의 하나가 분화구 안에 야구장을 만들자는 구상이었으나 자연을 훼손한다는 환경단체의 반대에 밀려 추진되지 못했다. 하지만 화구 주변 언덕 위로 도로가 뚫리고 주택가가 형성되면서 하논 분화구는 훼손 위기에 놓였다. 이즈음 학계 및 환경NGO가 하논 분화구의 보전 가치를 제기했다. 하논 복원 여론이 결정적 계기를 얻은 것은 2012년 제주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에서 '하논 분화구 복원'을 총회의 권고사항으로 채택하면서부터다. 2014년 학계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하논복원범국민추진위원회'(대표 고충석 서영배)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하논 복원의 요체를 한마디로 말하면, 분화구에 물을 담아 1000년 전 모습으로 되돌리자는 것이다. 지식인들은 왜 이런 발상을 하는 것일까.
하논 분화구의 복원이 제기된 이유는 지질학적 가치와 생태학적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마르(MAAR)형 분화구라는 지질학적 가치와 함께, 학자들은 약 5만년에 걸쳐 분화구 바닥에 쌓인 퇴적물에 눈을 돌린다. 두께가 8~15m에 이르는 퇴적층은 그 자체가 생명과 기후변화의 나이테를 품은 '타임캡슐'로 평가된다. 동아시아 고생물 및 고기후 변천 과정을 분석하는데 유용한 자료가 된다는 것이다.
세계 11위의 경제력과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이룩한 한국, 여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전국의 산야를 파헤치는 개발을 해왔다. 이런 규모의 자연복원을 추진한다면, 지역주민은 물론 나아가 국민의 자부심을 세워주는 '희망 프로젝트'로 평가될 것이다. 정부는 이제 아무도 가보지 않는 길, 즉 자연에 대한 보답을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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