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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더듬는 소리에 귀기울여야 하는 까닭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11.04 17:36 수정 2018.11.04 17:36

이 성 주 코리아메디케어 대표
이 성 주 코리아메디케어 대표

엘비스 프레슬리, 브루스 윌리스, 마릴린 먼로, 윈스턴 처칠, 잭 웰치 전 GE 회장, 박찬욱 감독, 모델 변정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네, 한때 지독하게 말을 더듬었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제 21회 ‘세계 말더듬의 날’입니다. 영어로는 ‘ISAD(International Stuttering Awareness Day)’이어서 직역하면 ‘국제 말더듬 인식의 날’에 가깝겠죠?
말더듬의 의학용어는 ‘Dysphemia’이고, ‘Stuttering’은 ‘단어의 첫 발음을 내뱉는 데 어려움을 겪어 발음을 주저하거나 되풀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비슷한 단어로는 ‘Stammering’이 있는데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주저하고 단어나 음절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약간 더 넓은 개념입니다.
ISAD는 1998년 유럽말더듬협회, 국제웅변협회, 국제말더듬협회 등의 단체가 말더듬에 대해서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로 정했고 매년 10월 1~22일 행사를 펼칩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27일 대전 우송대에서 워크숍이 개최된다고 하네요.
누구나 말을 더듬을 수는 있습니다. 외국인이 갑자기 길을 물을 때 아는 영어 단어도 생각나지 않아 더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 겁니다. 더듬는 낱말이 10%를 넘거나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등 생활에 문제가 있으면 말더듬으로 분류합니다. 2~7세 때 처음 나타나는데 뇌, 발성기관의 문제이거나 언어발달과정의 문제, 정서적 원인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최근 언어학자들은 어릴 때 말더듬이 오히려 언어능력이 일찍 발달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두뇌의 언어능력이 신체의 물리적 능력을 앞지르기 때문에 나타난다는 것이죠.
아이가 말을 더듬을 때 부모가 다그치면 오히려 악화되기 십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분야 대가인 반 리퍼 박사는 “말더듬은 어린이의 입에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귀에서 시작된다”는 명언을 남겼지요.
어릴 적 말더듬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낫지만,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전문가를 찾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스스로 극복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릴린 먼로의 섹시한 목소리는 학창 시절 말더듬 증세를 고치면서 생겼다고 하고, 엘비스 프레슬리와 호주 가수 카일리는 말더듬을 고치기 위해 노래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브루스 윌리스와 새뮤얼 잭슨은 말더듬을 고치기 위해서 연극을 시작했다가 스타가 됐고요. 오거돈 부산시장은 말더듬을 고치기 위해서 성악을 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말더듬을 극복한 사람 이야기는 영화로도 나와 2011년 아카데미상을 휩쓸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역사적 라디오 연설로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한, 영국 조지6세의 사연을 담은 ‘킹스 스피치’ 기억나시지요?
말더듬은 불편하지만 비난받을 일은 아닐 겁니다. 눌변(訥辯)의 눌은 ‘말더듬거릴 눌’이지요? 공자는 “목눌(木訥)한 사람, 말을 더듬거리거나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은 인자(仁者)에 가깝지만 교언영색(巧言令色), 화려하게 꾸민 언술과 빛깔 좋은 얼굴빛의 사람 중에 인자는 드물다”고 했지요?
청산유수(靑山流水)처럼 말을 잘 하는 것도 능력이지만, 어쩌면 지금은 말을 더듬으면서까지 생각과 말의 속도를 맞추는 것이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우리 사회가 교언영색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는 사회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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