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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육십은 청춘이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6.07.06 16:50 수정 2016.07.06 16:50

어른을 위로하는 마음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이젠 옛말이다. 그런 위로가 위안이 될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나이 드는 것을 거부하는 ‘노화기피현상’에 빠져 있다. 얼굴에서 본인의 나이가 드러나는 것은 자기 관리 부족으로 간주하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고자 하는 것을 매력으로 생각하는 세태가 만연해 지고 있다. 이는 직장에서 45세가 정년이라는 뜻의 ‘사오정’이나 56세까지 붙어 있으면 도둑이라는 의미의 ‘오륙도’라는 신조어도 이젠 옛말이다. 지난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나이든 국회의원을 공천에서 제외시키는 것을 보면 인생무상이란 말이 떠오른다. 자신들은 평생 안 늙을 것으로 생각하며 선거에서 젊은 층의 표가 당락을 갈라놓는 것을 보고 여야 정치권에서 온통 혁신, 개혁, 젊은이에 표어에 경쟁을 하고 있다. 참으로 멀리 보지 못하는 우리네 정치를 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노인네들은 점점 찬밥신세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최근 등장 하는 새로운 계층의 여성과 남성들도 이를 대변한다. 안정된 결혼생활을 누리며 신세대 못지않은 감각과 라이프스타일을 ‘나오미족(Not Old Image)’, ’나우족‘(New Older Women)’, ‘노무족’(No More Uncle)'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그들만의 문화와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 속에서 다양한 욕구를 갖고 있는 이들 새로운 계층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나이 드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육체적인 기능저하와 함께 일생 중 가장 책임과 권리가 많은 시기인 인생의 전성기에 한 발 물러서야 한다는 중년층의 정신적인 허탈감과 중압감, 현재 지위를 유지하고 싶다는 강박관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의 정신까지 늙는 것은 아니다. 미래 비젼이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적인 미래까지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고뇌, 외로움 때문에 기력이 쇠할 때 비로소 청춘이 시들어 버리는 것이다.노전(老前)생활이란 말이 없듯이 노후(老後)생활이란 말도 틀린 말이다. 우리가 그저 나이를 먹어가고 있을 뿐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미래도전이다. 젊은 시절부터 추구해 오던 것 물질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이러한 공허함은 오직 정신적인 만족으로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적가치(靈的價値)나 의미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는 ‘실존적 공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문제에서 궁극적인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삶의 마디마다 열정의 감정을 채워야 한다. 이러한 열정은 누군가로부터 관심대상인 사람만이 실천할 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가족이 있는 가정에서 형성된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관심 받았다는 기억 하나로 용감해 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는 그들의 믿음을 자녀들에게 각인시켜줘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늘 바라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 서로의 의지와 믿음을 말해주어 함께한다는 긍지를 갖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늙음의 의미가 어쩌면 많은 인생살이에 종결을 채워주는 모습일 수도 있다. 이 시대에 늙음은 나의 미래이다. 우리의 화상일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미래를 구한다면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누군가로부터 받은 늙음 미래는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서로 채워주고 나우어줄 때 밝고 맑은 미래가 될 것이다. 오랜 인생 경험을 들려주고 나누어 주는 젊은노인과 공존하는 미래 함께 할 때 우리미래는 아름다운현상으로 변할 것이다.노인은 한 세월 다 보내시고 어디 기댈 때도 없어 경로당이나 어느 공원 벤치에서 하루 종일 주저앉아 소일하고 있다. 그들의 남은 생을 위해 관심을 가지는 미래사회가 없다.난 올해 육십이다. 환갑이다. 그런데 환갑잔치가 이젠 없다. 육십은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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