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의 10번째 월드컵 도전은, 스포츠니까 가능한 소설이었다. 역대 최악으로 치닫는 듯했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반전 드라마를 작성했다.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을 살린 원동력은 역시 '투혼'이었다. 한국 축구의 오랜 미덕이다. 그 덕분에 자존심을 어느 정도 되찾았고 팬들도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투혼이 발휘되기 이전의 과정도 냉정하게 되짚는 작업이 필요하다. 손흥민의 말처럼, 이제는 길게 보고 4년 뒤 아니 8년 뒤까지 준비해야하는 까닭이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러시아 월드컵을 1승2패 조 3위로 마쳤다. 사실상 '올인'을 선언했던 스웨덴과의 1차전이 0-1 패배로 끝나고 선전했던 멕시코와의 2차전이 1-2 석패로 끝났을 때만해도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또 다시 3전 전패 대회가 나올 수도 있다는 불안이 강했다.
그러나 27일 카잔 아레나에서 펼쳐진 최종 3차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완파하면서 세상도 한국 팬들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날 대표팀은 90분 동안 11명이 하나처럼 움직이며 독일을 쩔쩔 매게 만들었다. 독일의 요아힘 뢰브 감독은 "솔직히 한국에게 패할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쇼크를 받았다"고 말한 뒤 "한국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단단했다. 계속 전진했고 빈틈이 없었다. 그 모습을 종료직전까지 유지했다"며 박수를 보냈다.
이를 악물었던 3차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에, 그래서 더더욱 앞선 경기들에 아쉬움이 남는다. 벼랑 끝에서 한국 특유의 믿기지 않는 기운을 발산하는 것은 분명 우리의 장점이나 계속해서 '설명할 수 없는 힘'에 기댈 수는 없다. 기복이 없어야 강팀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보완이 필요한 것은 '기본기'다.
냉정하게 접근할 때 개개인의 역량은 아직 세계적인 선수들과 격차가 있었다. 기술적인 수준은 이미 인정되는 차이고 체격은 물론 체력도 싸움이 쉽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짚어야할 게 기본기다.
애석하게도 한국의 플레이에서는 크게 3가지가 보이지 않았다. 정확한 패스가 나오지 않았고, 과감한 드리블 돌파가 보이지 않았으며, 슈팅까지 구사하는 이가 드물었다. 독일전이 그래도 나았으나 독일전조차도 정상권 팀들과의 그것과 견주면 부족했다.
축구는 여럿이 공을 주고받거나 아니면 홀로 상대 문전 근처까지 다가가 슈팅을 시도, 골을 넣어야 승리하는 스포츠다. 축구의 근간을 이루는 패스, 드리블, 슈팅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면 결과를 바랄 수 없다. 심지어 우리는 시도조차 잘 하지 못했다.
공을 잡은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곳이나 보내야할 곳으로 패스할 자신이 없으니 상대가 바짝 붙어 있더라도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공을 넘긴다거나 뒤로 돌았다. 소유권이 넘어간 동시에 위험에 처했던 이유다. 받는 사람도 자신이 비슷한 압박감에 처하는 게 두려운 것인지 적절한 장소로 이동하지 못했다. 소위 '오프 더 볼' 상황에서 제대로 움직여주는 선수가 없었다.
홀로 볼을 오래 간수하는 선수도, 도전정신을 발휘해 드리블을 치는 선수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기성용 정도만이 자신의 힘으로 탈압박이 가능했고 손흥민과 문선민이 그래도 공을 달고 앞을 향해 달렸다. 슈팅도 마찬가지다. 번번이 타이밍을 놓쳐 탄식하는 선수들을 보며 탄식한 팬들이 많았을 것이다. 기본이 탄탄하지 않으면 그 위에 성을 쌓을 수가 없다.
선수로서만 4번 본선 무대를 밟았고 코치와 감독으로 각각 1번 더 월드컵을 경험한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는 "본선 진출횟수가 늘어난다고 그냥 세계의 수준에 근접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일들은 경험을 하면 익숙해지고 늘지만, 월드컵은 다르더라"는 고백을 전한 바 있다.
10번째 월드컵, 9번 연속해서 나간 월드컵이 끝났으나 아직 한국은 월드컵에서 약체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겨뤄보려면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기본을 무시해선 어렵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