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5일부터 새로운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이 시행되고 있다. 지난 달 정부의 ‘안전진단 정상화 방안’ 발표에 따른 후속조치다. 새 기준은 구조안전성 가중치를 높이고 주거환경 가중치를 낮췄으며 조건부 재건축 판정일 경우 공공기관으로부터 적정성 검토를 받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새 기준이 전에 없이 ‘초고강도’여서 구조적으로 심각하지 않으면 재건축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또한 재건축을 하려는 단지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반발이 적지 않다. 행정예고기간 동안 제출된 의견을 반영해 주거환경 평가 항목 일부를 완화했지만 구조안전 중심으로 판정하는 새 기준의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안전진단 기준이 강화됐다고 하지만, 실은 과도하게 완화된 2015년 기준을 종전대로 환원시켜 놓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는 그래서 ‘안전진단 정상화 방안’이라 불렀다. 안전진단 기준의 과도한 완화는 재건축의 극심한 남용과 투기화를 불러 왔다. 최근의 집값 불안이 (강남)재건축의 과열에서 비롯됐다고 본다면, 아파트 안전진단 기준 완화는 그 불쏘시개였다.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는 재건축을 할 수 있는 티켓을 발부받는 것에 해당한다. 안전진단을 쉽게 통과한다는 것은 따라서 재건축 티켓이 남발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로 인한 재건축 남용 문제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뿐만 아니라 건축물의 과소비에 따른 자원낭비, 나아가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가로막는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재건축 안전진단제도는 낡아서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파트에 대해 재건축을 허용하기 위해 2003년 도입됐다. 안전진단의 평가항목은 구조안전성, 주거환경, 비용편익, 설비노후도 4가지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구조안전성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통과하기가 가장 어려운 항목이다. 재건축의 용이성을 좌우하는 이 항목의 비중 조정을 통해 역대정부는 재건축 규제의 강약을 조절해 왔다. 이 항목은 실제 2003년 45%에서 2006년 50%까지 올랐다가 2009년 40%, 2015년 20%로 대폭 축소됐다.
2015년 기준완화는 2014년 9·1대책의 재건축 규제완화의 일환이었다. 2015년 기준에서 통과 힘든 구조안전은 40%→20%로 대폭 낮춘 반면, 통과하기 쉬운 주거환경 비중을 15%→40%로 대폭 낮춘 결과,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 비율이 50%→90% 이상으로 올랐다. 2015년 이후 안전진단을 받은 아파트의 대부분인 96%는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았다. 조건부 재건축은 지자체장이 지역여건과 여론 등을 고려해 재건축 시기를 판정하는 유형이지만, 대부분의 단지가 시기 조정없이 바로 재건축이 추진됐다. 2015년 기준으로는 사실 거의 모든 재건축 단지가 안전진단을 통하는 데 문제가 없었던 셈이다.
이런 점에서 ‘주거환경의 가중치를 40%→15%로 낮추고, 구조안전성의 가중치를 20%→50%로 강화하며 조건부 재건축에 대한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의무화’하는 정상화 조치는 재건축의 남용과 투기화를 제어하는 예방적 조치가 되기에 충분한다. 최근 집값 불안의 중요한 진원지가 강남 재건축이라면, 안전진단 강화는 이를 잡는 유효한 수단임이 자명하다.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는 재건축 남용에 따른 사회적 낭비를 가로막고 주거의 지속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서울에서 정비사업 대상 주택의 평균 연수가 20년에 불과한 것은 멀쩡한 집을 허물고 돈이 되는 새 집을 짓도록 쉽게 허용하는 재건축·재개발 제도와 무관치 않다. 건축물의 과소비는 도시의 지속가능성과 근본적으로 상충한다. 재건축 안전기준 강화는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없으면 주택을 오랫동안 사용하라는 것을 전제한다. 돈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집을 무조건 허물고 새로 지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안전기준 강화로 공급이 준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재건축을 투기대상으로 바라 볼 때만 가능하다. 주택의 장기적 사용은 신규주택의 공급 필요성을 오히려 줄여준다. 안전기준 강화로 인한 재산권 침해를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이 또한 맞지 않다. 안전기준 강화는 공익적 목적의 도시계획사업인 재건축의 남용과 투기화를 막으면서 쾌적하고 지속가능한 주거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지 재건축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