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부터 8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어느 행사장의 축사나 기념사에는 '우리나라, 애국, 투철한 국가관'이란 용어 등이 전치사처럼 줄곧 등장했다.
물론 분단국가인 이 나라가 60~80년대까지만 해도 반공이념을 주춧돌 삼아 국가부흥을 꽤하는 과정이서 전 국민을 투철한 국가관을 앞세운 ‘애국’이란 구심체로 하나로 뭉쳐야 했기에 불가피한 강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의 본보기로 60년대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내건 슬로건이 새삼스럽지 않을 수 없다.
“짧은 일생을 영원한 조국에”였다. 이를 계기로 농촌계몽운동이 시작되고 4H운동이 뒤를 이었다. 한 발 더 나아가 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까지 등장하게 된다.
이는 이 나라 국민을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묶는 기적을 이루는 데 성공한 것으로, 당시 지도자들의 지혜가 더욱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작금의 특정세력이나 특정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팬 덤처럼, 그 불꽃은 엄청나게 타올랐고
국민들에겐 애국심으로 똘똘 뭉치는 커다란 둥지가 되게 했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이 되면서 세계 10대 선진국으로까지 등극하는 데 기여한 공적으로 남으면서 우리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88서울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개발도상국이 된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민들의 위상이 달라지면서 정치 환경마저 급변해져 갔다. 90년대부터인가 반공을 기피했던 진보세력들이 권력에 접근하면서 민주와 자유로 정치판이 리모델링 돼갔기 때문이다.
이즈음부터 보수의 뿌리는 갈수록 약해져만 갔다. 이로 인해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이란 이 '전치사'는 80년대 중반부터 자유와 민주, 평등이 굳세게 등장하면서 90년대부터는 행사장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지금에 와서도 방송을 비롯한 여러 언론의 뉴스에서조차 투철한 국가관으로 우리 국민을 하나의 공동체로 어우르는 ‘우리나라’라는 용어는 듣기도 찾기도 힘들 정도가 됐다.
작금의 이 나라 정치 환경에서도 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잘 나타나고 있다.
애국적 국가관은 외면되고 오로지 자신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집단을 위해서만 국민들을 소환하고 있다. 거짓과 아집, 상대 약점의 과대 포장과 물고 늘어지는 정치인들의 넘쳐나는 이기주의로 반성과 화해로 국민 섬김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를 두고 혹자들은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의 차이”라고 쉽게 풀이하고 있다. 또 “배불리 먹고 있는 자가 배부르게 한 자를 잊고 외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도 빗댄다.
때론 언론의 책임도 전혀 부정할 수 없다고 꼬집기도 한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순방에서 대통령이 한 발언(비속어)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도해 정치권의 논란을 불러왔음에서 주목하고 있음이다. 더 큰 논란은 미국이란 최대 동맹국과의 관계를 우려한 것에서 출발했다.
사실 그대로를 보도하는 언론의 ‘정론직필’이란 사명감도 중요하다.
하지만 “국익을 위해 순방중인 대통령이 실수를 했다 치더라도 국익을 우선해 고려할 수 있는 아량은 없었을까”하는 것이 지역 정가의 아쉬움이었다.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빼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였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신중치 못한 언행도 반성의 몫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었다. "장난삼아 한 말도 진심으로 들릴 수 있다"는 충고도 빼놓지 않았다.
또한 이 나라 여야 정치인들을 향해서도 “하루빨리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국가와 국격, 국익을 우선하는 ‘우리나라 국민’이 되라”며 쓴소리로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