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칼럼

역사에서 교훈을 본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6.07.24 14:30 수정 2016.07.24 14:30

역사에서 조선시대초기에는 강대국명(明)나라에 사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조선조에 군사력이란 전시기간에는 국가를 지키는 핵심이지만 평상시에는 국가경제에 불필요한 소비 집단이었다. 그 중에서도 상비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이러한 예산은 국가의 주력산업에서 생산되는 잉여가치로 충당한다. 그렇다면 주력산업에서 잉여가치가 생산되지 않도록 적절한 통제를 가하면 군사력을 기를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사라진다. 물적 토대를 약화시킴으로써 조선조에서는 상비군을 유지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 강대국명(明)나라의 소국으로서의 조선조에 대한 기본정책이었다. 당시 조선의 주력산업은 농업이었다. 농업에서의 핵심 동력원은 소이고, 농산물을 유통하기 위한 핵심 동력원은 말(馬)이었다. 특히 말은 평상시에는 유통의 근간이 되지만 전시에는 곧바로 군사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조선조에서 말과 소를 축내면 조선조의 농업생산성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조선 건국초기 강대국명(明)나라는 틈만 나면 말과 소를 바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조선의 주력산업인 농업의 단위 면적당 생산성이 크게 저하되었고, 적절한 수의 상비군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강대국명(明)나라는 소국조선이 진정으로 사대를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말과 소만 요구한 것이 아니다. 여자와 내시등도 끊임없이 요구했다. 강대국인 명(明)나라가 여성을 공출한 것은 전략적 차원이라는 증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미 고려시절부터 우리의 아리따운 처녀들이 원(元)나라로 끌려간 경우가 많았다. 당시 암울한 시대에서도 소국고려의 여인들 중에는 운이 좋아 원나라 황족들과 인연을 맺은 사례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원나라 말기 황제인 순제의 두 번째 부인 기황후다. 기황후는 고려인 가자오의 딸로서 몽골에 들어가 1333년 고려인 내시 고용보의 도움을 받아 원나라 황실의 궁녀로 있었는데, 순제의 총애를 받아 두 번째 황후로 책봉됐고, 황태자를 낳아 원나라의 황통(皇統)을 잇게 했다. 이런 역사인연 때문에 강대국인명(明)나라는 조선 초기부터 미모가 출중한 여성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첫 단서는 태종실록에서 발견됐다. 태종 8년(1408년) 명(明)나라사신이 서울에 도착하여 “소국조선국왕에게 말하여 미녀를 데리고 오라.”는 칙서를 낭독하니 태종 이방원이 “어찌 감히 마음을 다해 받들지 않겠습니까.” 하며 머리를 조아렸다고 실록은 전하고 있다. 같은 해 소국조선 태종시대에 명나라사신이 경복궁에서 처녀를 선발하는 역사실록이 보인다. 이날 사신은 담당 관리에게 “처녀들이 한결같이 박색이다. 어째서 아리따운 처녀가 없느냐? 네가 감히 다른 뜻을 가지고 형편없는 여자들만 뽑아 올린 것이 아니냐?”라며 화를 내자 황희가“이 계집아이들은 부모의 곁을 떠날 것을 근심하여 먹어도 음식 맛을 알지 못해 날로 수척해진 때문이니 괴이할 것이 없소. 당시 명(明)나라의 화장을 시켜보시오.”라고 달랜다.태종 8년 의정부(議政府)에서는 각도에 순찰사를 파견하여 다시 처녀를 선발하도록 하고 “지난번에는 도내의 처녀들 중 빠진 자가 많았다. 각 지방의 용모가 아름다운 처녀가 있거든 모두 정결하게 빗질하고 단장시켜 명(明)나라 사신의 사열을 기다려라. 만일 여자를 숨기고 내놓지 않거나, 침을 찌르거나, 머리를 자르고 약을 붙이는 등 꾀를 써서 선택을 피하려는 자는 모두 임금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죄로 처단하거나 가산을 적몰하라.”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당시 강대국명(明)나라로 공출되어 끌려간 처녀들은 나라 전체를 뒤지다시피 하여 찾아낸 만큼 미모가 출중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이 쇠하고 100여년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대국의 12위권에 드는 나라로 성장했지만 주위에는 아직도 중국 과 미국에 어쩌지 못하고 눈치외교만 하고 있다. 명나라시대에 처녀를 바치던 그때와는 달리 동남아 각국에서 많은 처녀들이 코리안 드림으로 몰려오고 있다. 그래서 국력이 융성한줄 알고 있었고 국격이 높다고 알고 있다. 우리는 이제 조선초기의 처녀공출이나 일제 위안부 같은 일은 없을 것이고 경제는 세계에서 12위이다고 생각한다. 그런 우리가 작금의 강대국 군사놀음에 나라 안에서 서로 시시비비하고 싸움만 한다면 또 나라가 대국에 엎드려 비는 자식공출 같은 사드배치 논쟁으로 회귀할 수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역사 중 스위스역사에 많은 가르침이 있다. 중세시대 용병으로 삶을 지탱할 수밖에 없는 작은 산악중립국이지만 2차대전시절 독일은 스위스를 어떠한 요구에도 부딪치지도 않았다. 그 나라 국민성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역시 소국이지만 러시아가 해볼 수 없었다.‘환향녀, 사드,’ 역사는 많은 교훈을 준다.자식공출 같은 사드논쟁에 우리의 선택은...... 성주군민은......


저작권자 세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