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가 건국해 그 역사가 천년을 가기란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가 없다. 신라가 바로 ‘천년의 왕국’이다. 때문에 천년이 이룩한, 문화·예술도 화려·극치를 말한다. 신라 수도인, 경주시는 ‘노천박물관’이다. 더구나 신라 수도인,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재는 금관총(金冠塚)이다.
금관총은 경북 경주시 노서동에 소재한 고분이다. 경주시 남방 평지에 거대한 봉토가 즐비하다. 사적 제39호 노서리 고분군의 하나이다. 1921년에 발견되어, ‘금관’을 비롯하여 황금 귀고리·자루솥(鐎斗)·허리띠와 곡옥(曲玉)·유리잔·칠기 따위가 출토됐다. 금관총의 원형은 직경 50미터다. 높이는 13미터 정도다. 고대 신라는 특유한 돌무지무덤에 목곽을 만들었다. 옻칠한 목관으로 추측한다.
1921년 9월 어느 날 경주의 중심가였던 노서동에서 집을 지었다. 집 주인은 집터의 낮은 곳을 고르기 위해 주변 언덕에서 흙을 파내어 썼다. 이 흙 속에서 구슬들을 발견했다. 일경(日警)이 이를 우연히 보았다. 흙을 파던, 언덕에서 유물들이 드러난 것을 확인했다. 그 언덕은 바로 금관총 무덤이었다.
무덤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뜻밖에도 금관을 비롯한 많은 유물들이 수습됐다. 신라 금관이 처음으로 출토되어, ‘금관총’(金冠塚)이라고 명명했다. 묻힌 이는 머리에 금관을 썼다. 금 귀걸이, 목걸이, 금제 허리띠, 금팔찌, 금반지 등을 찼다. 머리 위쪽의 부장궤엔 여러 그릇, 장식품, 맞갖춤, 무기 등 많은 보물들을 넣었다. 금관총 출토품은 연구 등을 위해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겼다. 1923년 경주에 금관 등을 보관·전시하는 ‘금관고’라는 건물을 짓게 됨에 따라, ‘경주박물관’으로 돌아왔다.
이 같은 것은 경주시가 노천박물관을 다시 입증했다. 2020년 문화재청과 경주시에 따르면,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시대 금동 신발 한 쌍이 43년 만에 다시 출토됐다.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금동 신발과 허리띠 장식용 은판, 각종 말갖춤 장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지난 16일 경주시에 따르면, 총 사업비 68억 9,000만 원을 들여, 노서동 금관총 부지에 조성한, ‘금관총 보존전시공간’을 상반기 중, 일반에 공개한다. 금관총 보존전시공간은 지상1층 규모로 건축 면적 617.32㎡(연면적 575.90㎡)의 전시공간이다.
건축물 자체는 이번 달 말 준공된다. 하지만 시설 내부는 문화재청의 승인 등 준비 기간을 거쳐야 하기에 는 정식개관은 이르면, 오는 6월이 될 전망이다.
당시 금관총 발견은 정식 발굴조사가 아니었다. 고분이 상당부분 파괴된 탓에, 묘의 구조나 유물의 정확한 상황은 밝혀지지 않았다. 경주시는 지난 2016년부터 금관총 복원사업에 착수했다. 3차례에 이르는 설계자문회의와 발굴조사, 설계공모, 문화재청의 설계 승인 등을 거쳐, 지난 2019년 1월 착공했다.
금관총 보존전시공간은 고분 형태로 복원된 천마총과 달리, 현대적 건축물로 복원된 것이 큰 특징이다. 시설 내부에는 신라 고분의 대표적 형태인 ‘적석목곽분’을 재현한 전시물이 공개된다. 적석목곽분은 지하에 구덩이를 파거나, 지상에 목곽을 짜 놓고, 사람 머리 크기의 강자갈을 덮는다. 그 다음엔 다시 그 위에 점토 따위의 흙을 입혀, 다진 무덤이다.
주낙영 경주 시장은 현재 남아 있는 금관총의 봉분 형태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기 위해 4차례에 걸쳐 설계안을 변경하는 등 금관총 보존에 중점을 뒀다. 해당 시설이 건립되면, 대릉원 일대를 찾는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신라 고분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지난 1월 신라 천년 고도 경주가 세계 최대 여행전문 지침서인,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이 선정한, ‘2022년 세계 최고 여행지 10위’에 뽑혔다. 이렇게 뽑힌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혹시라도 문화재의 훼손이다. ‘금관총 보존전시공간’은 일정한 기간을 교차하면서, 휴식기간을 두길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