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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반려학개론] 개와 곰, 생명의 무게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1.08.12 18:18 수정 2021.08.12 18:18

윤 신 근 수의사·동물학박사
한국동물보호연구회장

우려했던 일이 또 일어났다. 지난달 25일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에서 운동을 나온 사냥개 6마리가 산책하던 B씨(67)와 C씨(42) 모녀에게 달려들어 머리와 얼굴, 목 등에 심한 상처를 입혔다.
당시 개들은 입마개는 물론 목줄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견주(66)는 경운기를 탄 채 10~20m 뒤에서 개들의 뒤를 따랐다. 갑자기 개들이 모녀를 습격할 때 견주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개들은 ‘그레이하운드’라는 중대형 견종과 그 혼종(잡종)이다. 이 개는 이집트가 원산지다. 어깨 높이 약 70㎝로 큰 편이지만, 몸무게는 27~32㎏에 불과하다. 몸은 마르고 다리는 긴 ‘스프린터’ 형이다. 실제 토끼, 영양 등 발 빠른 동물을 사냥하는 용도로 개량됐다, 달리는 속도가 빨라 경마처럼 개 달리기 경기인 경견에 주로 사용된다.
이들은 국내에서 맹견으로 규정된 로트와일러,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 불테리어 등 5개 견종과 그 혼종이 아니다.
따라서 입마개 의무도, 맹견 보험 가입 의무도 없다.
사고를 일으킨 개들도 입마개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목줄마저 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다.
견주에 대해 문경시는 개 목줄 미착용 과태료 120만 원(마리당 20만원)을 부과했다. 경찰은 중과실치상과 동물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피해 모녀는 병원에서 봉합 수술을 받고 치료 중인데 정신적 충격이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문득 이 개들의 운명은 어찌 될지 궁금해진다.
곰, 멧돼지 등 야생동물이 민가에 내려와 사람을 공격하면 포획단이 나서 사살한다. 아니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도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을 빼앗는다.
야생동물은 아니지만, 7월 6일 경기 용인시에서 농장을 탈출한 사육곰이 인근 야산에서 사살됐다. 관계 당국이 신고를 받은 2시간 뒤였다. 약 3년 전 쇠창살 안에서 태어나 내내 갇혀 살다 간신히 자유를 맛본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물론 당시 곰은 사람을 공격하지 않았지만,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조처였다고도 할 수 있다.
생포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생포돼도 사유 재산이라 주인에게 돌아가게 된다. 다시 농장 내 좁은 우리에서 갇혀 지내다 10살이 넘으면 합법적으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웅담’이라 불리는, 손바닥만 한 쓸개만 남긴 채 말이다. 어쩌면 가장 행복한 순간 숨을 거둔 것이 곰에게는 더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수의사, 훈련사 등 반려견 전문가들은 한 번 사람을 공격한 개는 또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물론 과거 모 연예인의 ‘프렌치 불도그’와 같은 소형견도 사람을 물 수 있다. 그래도 아주 위협적이지는 않다. 그때 피해자를 숨지게 한 것도 합병증인 ‘급성 패혈증’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중대형견은 얘기가 다르다. 5대 맹견이 아니더라도 입질 한 번만으로도 사람을 얼마든지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즉 이번 사건을 일으킨 사냥개들이 앞으로 다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 주인만 처벌한다는 것은 ‘반쪽 대처’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을 공격한 개는, 최소한 중대형견이라면 그 사건 발생 원인, 향후 재발 우려 등을 잘 따져 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하루빨리 수의사, 훈련사 등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관련 논의를 해야 한다.
사냥, 경비, 반려 등 어떤 이유로 기르든 개가 사람을 공격하면 안락사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견주도 경각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더 나아가 맹견의 범위도 확대하는 것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개와 곰…조물주에게 모든 생명은 무게가 같다. 사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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