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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반려학개론] 개를 개, 고양이를 고양이라 부르지 못하고…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1.08.10 18:32 수정 2021.08.10 18:32

윤 신 근 수의사·동물학박사
한국동물보호연구회장

은행에 갔는데 창구 직원이 나를 “윤신근 씨”라고 부르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뭐지?” 싶을 것이다. “‘씨’가 거기서 왜 나와?”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윤신근님” 또는 “윤신근 고객님”이라고 불러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호칭 인플레이션 국가’다. 약 20년 전만 해도 ‘경칭’으로 통용되던 ‘씨’가 이제는 아랫사람을 일컬을 때나 쓰는 호칭으로 전락했다. 심지어 일부 대기업에서는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도 ‘님’을 붙인다. ‘씨’는 이러다 10년 안에 욕이 될지도 모르겠다.
호칭 인플레이션은 동물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필자도 그간 이 칼럼을 써오면서 ‘반려견’, ‘반려묘’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 ‘개’, ‘고양이’라는 단어는 가급적 자제했다.
개, 고양이라고 쓰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왠지 불편해하는 독자들이 있을까 우려해서다. 이런 걸 기자들은 ‘자기 검열’이라고 한다는데 기자가 아닌 ‘필자’인데도 알아서 삼가게 된다.
‘사육하다’는 말도 최소한 반려견, 반려묘에게는 쓸 수 없는 말이 된 지 오래다. 반려견, 반려묘라면 ‘기르다’보다도 ‘키우다’가 어감상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말처럼 여겨진다.
이러다 언젠가는 ‘반려하다’는 말을 써야 할 것 같다. 다행히 국어사전에 있는 말이긴 하다. 다만 그 뜻이 ‘짝이 되다’로 차이가 있긴 하다. 나쁘게 말하면 ‘언어 파괴’, 좋게 말하면 ‘언어 진화’로 얼마든지 그 뜻이 늘어날 수 있겠다.
10여 년 전만 해도 집에서 기르는 개를 일컬어 애견이라고 통칭했다. 한자 ‘사랑 애’(愛)를 붙였다. (같은 식으로 ‘애묘’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때만 해도 국내에서 고양이가 많이 길러지지 않아 애묘는 흔히 쓰이지 않았다)
애견이라는 용어가 애완동물(愛玩動物)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애완동물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로 영어의 ‘펫’(Pet)을 의미한다. 일본식 한자어인 데다 ‘완’이 완구, 그러니까 ‘장난감’으로 여긴다는 부정적인 인식까지 더해져 거부감이 커졌다.
그 대체 용어로 미국의 ‘컴패니언 도그’(Companion Dog)에서 따온 ‘반려견’이 부각됐고, 동물보호 의식이 확산하면서 개를 주인과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의미로 반려견이 통용하게 됐다. 그 사이 ‘1인 가구’가 대세가 되면서 고양이를 기르는, 아니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많아져 ‘반려묘’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애견, 애묘도 쓰기 힘든 상황이 되자 애완동물은 어느새 영어사전에서 ‘Pet’의 우리말 해석(현재는 반려동물로 나옴)에서도 퇴출당해 사어(죽은 말)나 다름없이 됐다.
그럼 과연 이런 호칭 인플레가 바람직할까? 개, 고양이를 반려견, 반려묘라고 불러준다고, 기른다 대신 키운다, 더 나아가 맞춤법에 어긋나도 반려한다고 해서 동물 사랑이 실현되겠는가.
최근 모 대기업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큰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연봉도 많이 받고, 복리후생도 잘 갖춰져 모두가 선망하는 회사다. 특히 직원끼리 상하 관계없이 ‘님’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런데 내부는 엄청나게 곪아있었다.
개나 고양이든, 애견이나 애묘든, 반려견이나 반려묘든 부르고 싶은 사람이 마음껏 부르는 것이 옳지 않을까. 개나 고양이라고 부르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애견이나 애묘라고 부르면 장난감처럼 마구 대하는 마음이 깔린 것인가. 반려견, 반려묘라고 불러줘야 그들은 나에게로 와서 진정한 동반자가 돼주나.
용어나 칭호는 다음 문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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