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삼십(三十)’을 ‘이립(而立)’이라고 하며, 30세가 되면 ‘스스로 바로 선다’고 하였다. 이립(而立)이란 단순히 ‘스스로 선다’는 의미의 자립(自立)이 아니라 ‘이치를 깨달으며 이룬다’는 뜻의 ‘성립(成立)’일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인 지방자치가 부활된 지 30년이 흘렀다. 이로써 지방자치제도 삼십(三十)이 되어 뜻한 바를 이루며 제대로 바로 설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헌법에 근거한다. 헌법 제8장 제117조 1항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했고 제118조 1항에 지방의회 설치를 규정했다.
이를 근거로 임명직 단체장에서 선출직 단체장으로, 지방의회 구성을 통해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하였고, 친환경무상급식, 주민참여예산제, 정보공개 등 주민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정책의 실현으로 지속적 발전을 했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권한과 예산의 독립이 없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 급기야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지방자치는 한낱 물거품이 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지방이 소멸하면 중앙도 없고, 지방자치는 의미가 없어진다.
지방분권은 지방자치의 핵심 요소이다. 분권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권한의 집중은 필연적으로 부패를 낳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지방분권은 권력자의 욕구를 억제하여 중앙집권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지역의 특수성에 맞는 지방행정 구현으로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또한 중앙정부의 과도한 부담을 완화시켜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효율성을 확보한다. 각 지방정부는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다양한 정책을 시도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지방간 경쟁을 유발하여 모두가 잘사는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주민 중심의 지방자치를 통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혁신, 창의성이 국가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근 지방자치법이 개정되었다. 주민참여 및 자치단체의 자치권을 확대, 지방의회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 지방의원의 정책보좌관제 도입, 자치경찰제 도입, 국가사무 지방이양 등이 주요 골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지방자치의 핵심인 지방분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지방자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이다. 주민이 없는데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방분권이 되어야 한다.
분권 없는 지방자치는 앙꼬없는 찐빵과 같다.
지방분권이라는 것은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과 재정을 지방정부로 이관하여 지방의 책임 하에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방분권 수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치사무는 국가사무와 지방사무가 7:3으로 국가사무가 압도적으로 많다. 지방정부는 지방의 고유한 사무를 처리하기 보다는 국가의 기관위임사무와 단체위임사무를 처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방, 안보, 외교, 사법 등 국가의 존립에 필요한 사무와 전국적인 통일을 기해야 하는 사업 등 중앙정부가 직접 해야 할 일을 제외하고 지방으로 이양하여야 한다.
일을 지방이 하고 있는데 권한을 국가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권력 집중이 부패를 양산한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또한 권한만 이양할 것이 아니라 책임도 이양해야 권한 이양에 따른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다.
둘째, 자치 재정은 세입 기준으로 보면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8:2로 지방세 수준이 매우 낮지만, 세출 기준으로 보면 4:6 수준으로 지방의 지출이 높다. 재정분권 없는 지방분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중앙정부에서는 재정분권에 관해 지극히 소극적이다. 국세와 지방세의 조정과 인구와 면적을 기준으로 재정분권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방분권은 시대의 흐름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중앙집권적 사고가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에 실질적 분권이 이루어지지 않고, 중앙집권적 사고 하에 형식적 지방분권만 강조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셋째, 자치입법은 지방의회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지만 대부분 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 제정을 허용하고 있고, 지역의 실정에 맞는 맞춤형 조례를 제정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다. 지역은 인구의 규모나 도시지역, 농촌지역, 산촌지역, 어촌지역 등 특성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토지의 이용과 관련해서 상위법에 저촉이 되어서 차별화된 조례를 만들지 못한다.
예를 들어 농림지역 마을에는 미술관, 박물관 등의 문화 시설이 들어 설 수 없다. 농촌마을은 대부분 농림지역인데 이를 간과하고 상위법의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농촌주민의 삶의 질 제고와 문화 향유를 고려하지 않은 까닭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입법권이 아니라 주민이 원하는 실질적인 입법권이 보장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넷째, 자치조직을 살펴보면 지방정부는 대통령령으로 정한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기구와 정원 기준에 따라 지방의 행정기구와 공무원을 둘 수 있어 자율권이 전혀 없다. 조직의 자율성 보장을 위해 조례로 제정을 하면 부단체장을 한 명 더 둘 수 있고, 인구 500만 이상은 두 명까지 둘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특성에 맞게 조직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권한을 지방정부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자치분권이라는 미명하에 진정한 자치분권은 없고, 형식적인 자치분권만 존재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예를 들어보면 지방자치의 일환으로 자치경찰제도가 도입되었다. 국가경찰과 지방경찰을 분리하는 이원화 모델을 수십 년간 논의하였으나 국회에서 폐기되었다. 최근 자치경찰의 별도 조직 없이 시·도경찰위원회가 생활안전, 여성, 청소년, 교통문제에 국한해서 시·도경찰청장을 지휘하고 있어 당초의 목적에서 변질되었다. 지방자치, 자치분권 실행이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자치 경찰은 국가경찰과 지방경찰의 업무의 혼선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이상과 같이 살펴보았듯이 지방자치를 위한 자치분권은 형식적이다. 현재 중앙정부에서 수립한 자분분권 계획이 실행된다고 해도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 지방 소멸의 문제를 방지하는데 한계가 있다. 자치사무, 자치재정, 자치입법, 자치조직문제를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은 지방에서 사는 것이 중앙에서 사는 것 보다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하나씩 바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