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명장은 이순신 장군(1545~1598)이시다. 이순신은 조선중기(선조) 때 명장으로 아버지 이정과 어머니 초계 변씨 사이에 4형제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건천동(중구 인현동)이 탄생지다.
이순신은 어려서부터 충효와 글재주가 뛰어난데다 정의감과 용감성을 겸비했는데, 금상첨화로 인자한 성품을 지녔다. 강한 정의감은 나중에 벼슬살이를 할 때 상관과 충돌하여 모함을 받기도 했다. 용감성은 매양 전투에 선두가 되어, 부하들의 사기를 돋구어 이순신 사전에는 패전이란 말이 없다. 활을 잘 쏘는 명궁(名弓)이었고, 글씨도 뛰어난 명필(名筆)로 문무를 겸전했다. 내우외환의 딱한 처지에 놓인 오늘의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 충무공의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옹골찬 대비태세를 갖춰, 국난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순신은 지휘관으로 평소 훈련을 철저히 시켰다. 다한소혈(多汗小血)의 값진 교훈을 잊지 않았다. 평소 훈련하느라 땀을 많이 흘리면, 싸움터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 희생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순신 장군은 무장이지만, 문관이상으로 학문에 조예가 깊고, 평소 기록을 꼼꼼히 하여 유사시에 대비했다. 조총이 빗발치는 야전장에서도 먹을 갈아, 한지에 그날 그날의 전황과 상황을 생생한 기록으로 남겼다. 이 충무공의 난중일기는, 효종 때 국가에서 책으로 펴내 이순신의 필승정신과 성실함이 후대에 확실하게 전해졌다.
요사이는 직접적인 전쟁은 없어서, 일기를 적기에 임진왜란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여건이 좋다. 종이도 필기도구도 너무 편리하다. 학생도 어른들도 날마다 일기를 적으며, 반성하는 생활을 하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지상낙원이 될 것 같다.
이순신 장군은 임란때 왜군과 해전을 23차례 했는데, 23차례 모두 이겨, 완승(完勝)을 거머쥐었다. 이순신이 백전백승 할 수 있었던 비결은 평소 훈련을 철저히 실시하고, 군량미를 비축하고, 무기를 계발하고, 부하장병의 인격을 존중했다.
조선수군이 일본 수군과 싸울 때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일본과의 거제도 옥포 첫 해전에서 크게 왜군을 무찔러 이후 조선수군은 왜군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가지고 싸워, 늘 이길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뛰어났기 때문인 것이다. 이순신은 전쟁의 목적은 국태민안(國泰民安)에 있음을 절감하여, 신중하게 적과 싸우고, 아군의 희생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이순신은 조선역사상 최초의 3도 수군통제사(종2품)가 되어, 전라·경상·충청의 3도수군을 연합함대로 편성하여 일사분란하게 전투를 이끌었다. 이순신 장군은 평생 두 차례에 걸쳐 백의종군을 했는데 1차는 함경도북병사 이일에게, 2차는 원균의 모함으로 권율 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을 하게 된 것이다.
수양이 덜 된 사람은 백의종군을 하게 되면, 죽음을 택하게 된다. 드날렸던 장군이 계급장을 떼고 이등병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되니, 보통 사람으론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다. 원균의 참패로 위기에 처한 선조는 사과도 없이 무조건 이순신 장군을 복직시켰다. 이순신은 선조의 지난날 억울한 조치를 아랑곳 않고, 깨어진 배를 화급하게 수리하여, 진도의 울돌목(명량)에서 왜선 133척과 격전을 벌여, 왜선 31척을 격침시켜, 재기에 성공했다. 백성들의 지지를 받던 이순신은 재기에 성공한 이후, 한산도대첩 때 이상으로 이순신 장군에게 백성들이 몰려와 해상왕국이 부활하게 되고, 백성들이 왜군과의 전투에, 이순신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당시 선조는 구국의 충신 이순신에 대한 처우가 소홀했지만, 후세의 국민들과 역사에는 이순신의 구국의 성웅으로, 불후의 명장으로 최상의 대우를 받고 있다. 이순신이 이룩한 해전의 3대첩은 한산도 해전·명량 해전·노량 해전임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자. 이순신장군은 우리 국민들이 국가가 위기를 당할 때마다 중요한 교훈을 준다.
선공후사(先公後私)와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을 상기해야 한다. 내년(2022년) 양대선거(대선/지방선거)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같이 국가관이 확실하고 애국심이 투철한, 진짜 애국자를 뽑으면 국리민복이 절로 보장되리라. 이순신과 제갈량을 비교하여,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이순신과 제갈량도 둘 다 충신이며, ▲이순신도 제갈량도 전선에서 생을 마쳤다.(향년도 두 분 다 53세) ▲이순신도 제갈량도 죽던 날 하늘에서 거성(巨星)이 떨어졌다. ▲이순신도 제갈량도 시호가 충무공이다. ▲이순신과 제갈량의 다른 점은 이순신이 전사하고 나서, 조선은 조선후기의 발전을 맞이하지만, 제갈량은 죽고 나서 촉나라가 망하고 만다.
이렇게 위대한 이순신 장군을 가진, 우리 국민은 장래가 있는 국민이 꼭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