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4.64%(2019년 기준)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이다.
우니라나는 총액 기준으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5위에 해당하는 R&D 투자를 많이 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2021년 발표된 정부 R&D 예산은 총 27조 4,000억 원으로 2020년 24조3,000억 원 대비 13.0% 증가했다. 최근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며 R&D 투자가 더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기후·에너지분야는 최근의 기후변화 가속화와 더불어 2015년 파리협정 당시 청정에너지 R&D 공공투자를 늘리기 위해 출범한 미션이노베이션(Mission Innovation)을 기반으로 R&D 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과학기술통신부에서 발표한 2018년도 기후기술 분류체계 적용 국가연구개발사업 투자·성과분석(2-20.10)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후기술 관련 국가 R&D 총 투자액은 2조 5,694억 원으로 국가 전체 R&D 예산(19조 8,000억 원)의 13.0%에 해당한다.
이를 기후변화 대응 정책 유형별로 분류하면 온실가스 감축 분야에 1조 6,885억 원(65.7%), 적응 분야는 7,218억 원(28.1%), 융복합 분야에는 1,590억 원(6.2%)이 투자되었으며 이 중 온실가스 감축 및 융·복합 분야는 재생에너지, 에너지수요, 에너지저장 등 대부분 에너지 부문 기술로 구성되어 있어 전체 기후기술 R&D 투자의 70% 정도가 에너지 분야에 투자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1조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자되는 에너지 R&D를 총괄 관리하는 주무 부처가 없어 부처별로 업무 분야 및 영역확대를 위한 중복투자와 산발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기후변화 대응 정책 총괄은 국무조정실과 환경부가 맡고 있지만, 에너지는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가 담당하는 분야이고 다양한 분야와도 연계성이 많아 산업부뿐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등 15개 내외의 부처가 에너지 R&D에 투자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부의 경우 기초원천기술 개발, 응용·상용화 기술개발로 역할분담을 하고 있지만, 에너지 기술의 특성상 그 경계가 모호한 것이 사실이고 상용화 기술에서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별도로 지원하는 예산이 있어 중복성이 배제되기가 어렵다.
또한 이렇게 투입된 예산에 대해 투자가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실제 기후변화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평가할 수 있는 성과도 집계된 바가 없다.
일반적인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성과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서 과학적 성과, 기술적 성과, 경제적 성과, 사회적 성과로 분류하여 논문, 특허, 기술료, 인력양성지원, 연수지원 성과 등을 조사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국가적 목표가 연계되어 있는 에너지 R&D의 경우에도 투자 목적의 차별성이 반영되거나 부처별 지원 영역에 대한 차별화 없이 동일한 기준으로 성과 평가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분산화·파편화된 방식의 R&D 투자로 태양광, 수소·연료전지 등 개별 기술의 확보와 관련 산업의 경쟁력 제고에는 기여했다고 할 수 있지만,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국가적 목표 달성에의 기여는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적으로 실질적인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을 위한 혁신적인 기술개발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고 탄소국경세와 같은 국제적인 환경규제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국내외 산업 환경 여건, 국제 동향, 국내 기술 성숙도 등을 고려한 장기적인 R&D 전략 수립과 방향성 제시가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위기 대응 정책 방향과 부합하는 기술개발 로드맵을 구축하고 정부 R&D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R&D 지원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이 모든 기술 분야에 대해 나눠주기식으로 투자하기보다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가 높은 기술 위주로 R&D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정부 정책, 기술 수준, 시장 현황 등을 고려한 우선순위에 따라 R&D 예산을 지원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투자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통합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고 부처별 역할분담을 재구조화하여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기후변화 대응 R&D에 차별화된 성과 평가 제도를 수립하여 기존의 기술적·경제적 성과만이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변화 영향 감소 등 사회적 편익을 얻기 위한 목적 지향적 R&D를 추진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안들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R&D 포트폴리오 수립과 기획부터 성과 평가·활용까지 전주기 관리에 필요한 데이터를 구축하고 과학적인 방법론을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기술별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는 기술 데이터베이스(DB)와 이를 활용할 분석 모델이 필요하며, 기술별 투자 우선순위 도출, 성과분석, 환류 등을 위한 방법론 구축과 이의 지속적인 운용을 위한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그동안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기후·에너지 거버넌스 개편과 속칭 눈먼 돈으로 불리는 정부 R&D 예산의 효과적인 투자를 위한 R&D 체계 개편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계속 있어 왔다.
현 정부 출범 당시에도 기후에너지부 신설이 논의되었다가 무산된 바가 있으며, 최근에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2020.12.)을 통해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 설치와 산업부 내 에너지 차관 신설 계획이 발표된 바가 있다.
아직은 이러한 계획이 실행되기 전이라 탄소중립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이 분명하지 않고 에너지 차관 신설만으로는 부처간 역할 조율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을 시작으로 기후·에너지 정책의 중요성과 시급성에 대해 공감하고 에너지 R&D 투자가 실질적인 기후위기 대응에 기여할 수 있는 여건이 속히 조성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