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가격 폭등의 시기에 경제학자들은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적잖이 ‘평가절하’(정확하게 말하면, 무시) 당했으리라 생각된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경제생활은 돈을 벌고 관리하는 기술과 관련한 무엇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문적 교육을 받은 경제학자라면 경제가 돌아가는 원리에 정통하고 그 원리에 따라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돈 버는 스킬과 정보에도 더 가까이 다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인적 경험치(rule of thumb)로 짐작컨대 아마도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는 만족할만한 조언을 해 주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하고 구구절절한 설명을 덧붙일 수 있다. 가령, 실전보다 학업을 택한 사람들의 개인적 투자 관심사의 차이라든가, 자산 투자시간 대비 본업에 투입한 시간의 평균 수익률이 더 높다든가 등등. 내가 좀 더 선호하는 설명은 학문 자체의 특성에서 발견된다.
초기 경제학은 매우 ‘근대적’인 사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아담 스미스의 도덕철학과 아이작 뉴턴의 자연철학이 표방하는 세계관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나, 사회와 경제를 움직이는 스미스적 원리는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뉴턴 물리학의 원리와 유사하다.
스미스의 ‘자연가격’은 시장가격이 ‘사물의 자연적 경로가 방해받지 않는 과정’을 통해 수렴해 가는 가격으로,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작동하는 개념이다.
아담 스미스뿐만 아니라 경제학을 오늘날과 같이 체계화한 앨프레드 마셜, 어빙 피셔, 윌리엄 S. 제봉스 등이 물리학과 수학에서 출발하여 경제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근대 물리학의 균형 개념을 공유한다. 수학자 데이비드 오렐(David Orrell)은 19세기 경제학이 맥스웰(Maxwell)의 음의 피드백(negative feedback)과 가우스의 정규 분포(Gaussian distribution)라는 자연과학계의 성과를 공유한다고 설명한다.
이때 확립된 신고전파 경제학은, 공학에서는 외부의 충격을 0으로 수렴하게 하는 기제를, 통계학에서는 정규분포 확률에 대한 가정을 가져옴으로써 자유시장 경제의 경기순환 안정성을 설명하는 경제이론의 기초로 활용하였다.
좀 더 현대로 오면 파머의 ‘효율적 시장 가설’은 아인슈타인의 무작위 운동(Brownian motion)을 구성하는 원자처럼 원자화된 경제주체로 구성된 시장에서 음의 피드백이 작동하는 원리를 한층 정교하게 설명한다.
전통적 신고전파 이론과 달리 J. M. 케인즈나 행동경제학의 대가인 로버트 실러와 리처드 세일러 등은 기존 이론에 심리학을 적극적으로 접목하였다.
이들은 야수적 충동(animal spirit), 유동성 함정, 구성의 오류, ‘생각의 전염’, 넛지(슬쩍 찌르기)와 같은 개념들을 사용하여 물리적 법칙이 설명하지 못한 이론과 현실의 공백을 메우고자 하였다.
이들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인간은 얼마든지 비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론에 수용하였다.
효율적 시장가설이 전제하는 것과 달리 이들이 생각한 사회는 단절된 원자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따라서 경제주체 상호 간에 발생하는 양의 피드백으로 인해 경제를 균형으로 수렴시키는 자동조절기제는 언제라도 파괴될 수 있다. 현실 경제에서 그것은 때로는 자산시장 버블로 때로는 공황으로 나타나게 된다.
세계관을 달리한 이들 두 그룹의 투자 성적표는 어땠을까?
피셔는 1929년 대공황 직전까지도 주식가격이 ‘꺼지지 않을 고점’에 도달했다고 설파하면서 개인적 부와 학자로서의 명성 모두 주식시장과 함께 침몰당한, 투자 실패의 대표적 아이콘이다.(하필이면 그의 가장 유명한 이론은 통화량과 가격의 관계를 설명한 화폐 수량방정식이다)
피셔에 앞서 기계론적 자연관의 태두인 뉴턴 역시 주식시장의 과열을 감지하지 못하고 버블의 붕괴와 함께 자산의 대부분을 종잇조각으로 소각당한 인물이다.
반면 케인즈는 대공황기에 성공적 주식투자로 자산을 수십배 불린 투자의 대가였으며, 세일러 교수 역시 2009년 이후 뉴욕 증시 평균 수익률의 2배에 달하는 투자수익을 거둔 고수로 알려져 있다.
극명한 대비를 보이는 결과이긴 하지만 몇 가지 샘플로 이를 지나치게 일반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세상이 분절적 원자의 운동으로 조화롭게 수렴한다고 믿었던 대가들이 실러가 말한 ‘심리적 전염병’에 쉽게 감염된 반면, 인간의 비이성과 경제시스템의 불완전성을 인정한 학자들은 오히려 시장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경제학계의 이단아들이 비합리적인 시장의 광기나 공포에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정통이론의 설명력이 떨어지는 현실을 맞닥뜨릴 때 기존 이론에 집착하기보다는 정통이론이 설명하는 바와 현실 사이의 갭을 메우는 지적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현재 전세계는 전대미문의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백신의 보급으로 우리의 생물학적 삶은 머지않아 정상화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경제적 삶은 이전과 같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장기침체, 고용 없는 성장, 초저금리의 지속, 실물경제와 분리된 자산시장의 폭등 등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만들어진 뉴노멀(New Normal)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욱 심각해질지도 모르겠다.
과거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제 현상을 예측하고 그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좀 더 이단아적 경제학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대공황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불안정했던 자본주의 체제가 국가의 재정투입과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당대로서는 이단아적 아이디어로 극복되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