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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뜨거웠던 함성의 그날, 3·1절을 기리며…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1.03.01 17:15 수정 2021.03.01 17:15

박 혜 민
대구지방보훈청 복지과

유난히 한파가 기승을 부렸던 올 겨울이 어느덧 막바지에 접었다. 특히 종식되지 않은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너도나도 마음이 얼어붙어 올 겨울은 더욱 춥고 무력하게만 느껴졌던 계절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게 된 지 어느 덧 1년이 훌쩍 지나, 지금은 세계 각국에서 백신 접종을 시작하였고 우리나라도 고령자부터 순차적으로 전 국민 백신접종을 실시하겠다고 하니 올 봄은 희망이 있는 따스한 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역사적으로 우리 국민들은 국난과 역경을 특유의 애국심으로 극복해왔다. 한반도의 그 긴 세월만큼이나 이렇게 유구하고 다양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달력에 빼곡히 기록된 수많은 기념일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이제 2월을 보내고 3월을 맞이하는 현 시점에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야 할 날이 있다. 바로 3·1절이다.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3·1운동은 고종황제의 죽음에 대한 의문과 일제의 무단통치, 식민지 수탈정책으로 민족의 분노가 확산된 가운데, 국내외에서 거국적으로 일어난 만세운동이다. 손병희, 이승훈, 한용운 등으로 대표되는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자진 신고하여 일본경찰에 체포된 뒤, 학생들도 독자적으로 움직이며 만세시위운동을 벌이던 가운데, 고종의 국장을 보기 위해 몰린 인파들도 가세하면서 만세운동의 열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조선총독부의 폭압적인 진압이 있었지만,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계층과 연령은 점점 더 다양해졌고,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전개되었다.
이 3·1운동은 최초의 시민주도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존의 역사적 사건들이 지도자 중심으로 이뤄내고 기록된 역사였다면 이 3·1운동은 최초로 일반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펼쳐나간 운동이었다. 이 운동 이후 독립운동이 더욱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독립전쟁으로 발전되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촉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근대적 국민의 탄생이라는 의의를 두기도 한다. 독립의 쟁취라는 한 가지 목표만 놓고 봤을 때는 결론적으로 실패한 운동이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역사적이고도 중요한 운동이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자유는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애국선열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낸 값진 결과물이었다. 어린 학생들과 일반 평민과 심지어 당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천인 계층도 나라를 되찾겠다는 숭고한 정신으로 거리로 나와서 목숨 걸고 쟁취해낸 역사였다.
요즘 인터넷상에는 ‘희망이 없는 지옥(hell)같은 한국 사회’를 뜻하는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현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담는 단어라지만 들을수록 참으로 씁쓸해지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코로나19로 소위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지만 우리는 과연 우리 선열들 앞에서 저 단어를 쉬이 꺼낼 수 있을까?
매년 3·1절에 정부와 각 지자체에서 기념식을 거행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공헌하신 독립유공자를 발굴하여 훈장을 수여하는 행사를 개최해 왔다. 혹여 작년처럼 코로나19로 인해 기념식과 행사가 취소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예전처럼 대규모의 기념식을 갖지 못하더라도 3·1절 하루만큼은 꼭 우리 선열들의 그 뜨거웠던 마음을 떠올려 보며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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